2026. 5. 16. 00:39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성공사례
이제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을 위해 2026년 4월 8일 이후 전국 공공기관에 차량 2부제(홀짝제)가 시행 중이기 때문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너무 많이 쓴다는 뉴스가 나온다. 기업들은 RE100을 맞추느라 바쁘고,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아파트 분양 광고에는 '에너지절감형', '제로에너지', '친환경 인증'이라는 문구가 익숙하게 등장한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에 산다고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바뀔까? 여전히 차를 몰고 장을 보러 가고, 세탁기를 돌리고, 난방을 틀어놓은 채 창문을 연다. 건물만 친환경이고 생활은 그대로다. '로우투노 프로젝트'는 이러한 상황에 질문을 던진다.
"에너지 절감 건물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로우투노 프로젝트가 기존 친환경 건축과 달랐던 것
2009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하나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름은 로우투노(Low2No). '저탄소에서 무탄소로(from low carbon to no carbon)'라는 뜻이다.
로우투노는 본래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을 위한 친환경 건축 프로젝트였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사용자 리서치, 미래 거주자 참여, 스마트 서비스 접점 디자인, 생활서비스 생태계 구성이 핵심적으로 작동했기에 건축 분야에 서비스디자인이 통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핀란드혁신기금 Sitra와 헬싱키시가 함께 추진한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도시의 블록 하나를 실험장으로 삼아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이었다.
* Sitra(Finnish Innovation Fund, 핀란드혁신기금)는 1967년 핀란드 독립 50주년을 기념해 설립된 핀란드 의회 직속 기관으로, 특정 부처의 예산 통제를 받지 않고 독립된 기금 운용 수익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 분야 종합정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 KDI가 정부 수탁과제 중심의 재원 구조 안에서 정책 정당화 연구에 편중될 수밖에 없는 반면, Sitra는 스스로 핀란드의 미래를 위한 의제를 설정하고 당대 정부 기조와 다른 방향의 실험을 추진한다. 2024년 이후 최근의 의제는 성장(Growth), 지속가능성 전환(Sustainability transition), 민주주의와 양극화(Democracy and polarisation), 데이터와 인공지능(Data and AI)이다. Sitra는 연구보고서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파일럿 프로젝트로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정부·기업·시민사회에 확산시키는 실험 플랫폼 역할까지 수행한다. 재원의 독립성이 의제의 독립성을 만들고, 의제의 독립성이 장기적·비판적 미래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Sitra는 공공기관이 정치 주기에 종속되지 않고 국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Sitra는 당시 이 프로젝트를 이렇게 정의했다.
"지속가능한 건축 환경을 만들고, 생태적 도시생활의 조건을 조성하는 접근."
건물과 사용자의 생활 경험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속가능성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와 경험의 문제라는 판단이 출발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건축은 단열재를 더 두껍게, 태양광 패널을 더 많이, 비용은 줄이면서 기술을 총동원해서 에너지 소비량을 기준치 이하로... 이런 조건을 목표로 추진된다. 이러한 것들은 건물의 성능을 높이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 빠져 있다. 로우투노는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했다.
"사람이 이곳에서 살아갈 때, 어떤 환경과 서비스가 있어야 저탄소 생활을 선택하게 될까?"
이 질문은 프로젝트의 성격을 단순 친환경 건축을 구축하는 것에서 새로운 생활 방식을 디자인하는 문제로 바꿨다. 냉장고에 에너지 등급 스티커를 붙이는 것에서 장보기·보관·조리·공유의 방식을 모두 바꾸는 것과 같은 차원의 변화다.
이 프로젝트에는 세 가지 디자인 개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① 사용자 경험 디자인(UX Design) : 제품이나 공간을 '기능'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경험' 중심으로 설계하는 방법이다. 앱이나 웹사이트에서 익숙한 개념이지만 건축과 도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②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 : 사람이 어떤 서비스를 경험하는 전체 흐름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병원 진료를 예로 들면, 예약→대기→진찰→수납→귀가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각 접점을 개선한다. 건축에 적용하면,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장 보고 귀가하는 '하루의 흐름' 전체가 설계 대상이 된다.
③ 참여 디자인(Participatory Design) : 전문가가 답을 정해놓고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시민·이해관계자를 디자인 과정의 처음부터 참여시키는 방법이다.
로우투노는 이 세 가지를 도시개발에 동시에 적용한 프로젝트였다.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디자인 개념이 특히 부각되어 보이는 이유는 개발팀에 서비스디자인 전문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건물을 짓기 전에, 사람의 하루를 먼저 그렸다
공모에서 선정된 컨소시엄은 건축회사(Sauerbruch Hutton), 엔지니어링 회사(ARUP), 금융회사(Galley Eco Capital), Experientia라는 UX리서치·서비스디자인 전문 회사로 구성되었다. 건축 프로젝트에 서비스디자인기업이 핵심 멤버로 참여한 것이다. Experientia는 미래 거주자들의 생활을 먼저 조사했고 기상, 식사, 출근, 통학, 장보기, 귀가, 휴식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흐름을 한 장의 지도로 그렸다. 각 사람마다 경로가 다르다. 그 경로들을 지하철 노선도처럼 겹쳐 보면, 어디에서 공용 세탁이 필요하고, 어디에 공동공간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며, 어떤 지점에서 생활서비스가 개입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이것을 사용자 여정 지도(User Journey Map)라고 한다. 평면도를 먼저 그리고 사람을 끼워 넣는 방식이 아니었다. 사람의 여정을 먼저 그리고, 공간과 서비스를 그 여정에 맞게 배치했다. 건축을 '공간의 조합'이 아니라 '경험의 연쇄'로 본 것이다.

스마트미터를 계량기가 아니라 '생활 인터페이스'로 봤다
에너지 시스템 설계에서도 사용자 경험 관점이 드러난다. 스마트미터는 보통 전기 사용량을 측정하는 장치다. 사용량을 숫자로 보여주는 기능이 다이다. Experientia는 이것을 거주자가 자신의 소비를 이해하고, 행동을 조정하며, 공동체 서비스에 접근하는 생활 인터페이스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이 구상한 기능은 이렇다.
- 실시간 에너지·물·폐기물 사용량 피드백
- 개인 소비 패턴 분석
- 절감 시 보상 체계
- 공용시설 예약, 배달, 공동서비스 일정
- 대중교통 정보
당시는 새로왔던, 지금 스마트홈 앱에서 익숙한 기능들이다. 다만 이 구상이 어느 수준까지 실제 건물에 구현되었는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로 전부 확인하기 어렵다. 완공된 건물에 도입된 것으로 확인된 시스템은 세대별 전기·온수·냉수·실내온도 측정, 클라우드 연계 소비 모니터링, 외출 시 가전과 조명을 차단하는 home/away 스위치다. 정교한 인터페이스 구상이 어디까지 실현되었는지는 별도의 사후 검증이 필요하다.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전기를 절약하세요"라는 문구와, "오늘 당신은 어제보다 난방 에너지를 12% 더 썼고 그것은 이 블록의 평균 사용량보다 9% 높습니다."라는 피드백은 전혀 다르다.
공용공간은 '남는 면적'이 아니라 '서비스 거점'이었다
로우투노는 각 세대가 모든 것을 따로 갖는 기존의 주거 모델에도 의문을 던졌다. 집마다 세탁기, 사우나, 사회공간을 따로 두는 대신, 블록 전체가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완공된 후 로우투노에 최종적으로 구현된 시설 목록은 공용 세탁시설, 공용 사우나, 레스토랑, 카페, 식료품점, 지역 식품 마켓, 반공공 시장공간, 주민 공동공간인 C_LIFE Center 등이다.(헬싱키시 자료 기준) 시설을 공유하면 면적과 자원을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주민 간 접점도 만들어진다. 세탁, 사우나, 장보기, 커뮤니티, 에너지 관리 같은 기능을 블록 차원의 생활서비스로 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럽·행사·사우나 등 공용시설은 외부 사업자가 운영을 맡도록 설계되었다. 사용 빈도를 높이고 서비스 품질을 유지함으로써 시설 자체의 탄소 발자국도 줄이는 구조다. 각 건물은 레크리에이션 구역과 놀이 공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발코니·마당·온실형 보온 공간 등 다양한 외부 공간이 커뮤니티 생활을 지원한다.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 어떤 서비스가 필요해지는가에 주목하여 생활의 흐름 속에서 실제로 필요한 순간에 공용서비스가 작동하도록 설계했다. 공용 세탁실과 목재 펠릿 사우나는 Experientia가 Low2No 프로젝트 안에서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서비스다. Sweco의 개발 디렉터 유하 비흐마는 완공 이후를 이렇게 말한다.
"이 블록에는 친환경 공용 세탁실과 목재 펠릿으로 가열하는 사우나가 있는데, 여기가 지역의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로 떠올랐다."
설계 단계에서 Experientia가 예측했던 공용공간의 역할이, 완공 이후 실제 주민의 생활 속에서 확인된 것이다.
참여 디자인: 미래의 생활을 예행연습하다
로우투노는 설계 초기부터 참여 디자인을 적용했다. Experientia는 미래 거주자들을 초기부터 과정에 참여시켜, 어떤 스마트 시스템이 유용한지, 어떤 공동시설이 실제로 쓰일지, 어떤 생활 방식이 받아들여질지를 미리 확인했다.
'Low2No Camp'는 로우투노 참여 디자인의 한 사례이다. 2011년 5월, 싱크탱크 Demos Helsinki가 Sitra의 지원으로 Low2No Camp를 시작했다. 선발된 약 25명의 도시 활동가들은 헬싱키에서 출발해 베를린까지 이동하며 지속가능한 도시 만들기를 배우고 실험했다. 헬싱키로 돌아온 후에는 여름 내내 야간 자전거 타기, 레스토랑의 날(Ravintolapäivä), 블록 파티, 도시 텃밭 가꾸기 등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며 탄소중립 블록에서 작동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와 생활 모델을 탐색했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그 안에서 작동할 생활을 먼저 만들어본 것이다. 이것은 건축에서 낯선 접근방식이다. 보통 건물이 완공되면 입주자를 모으고, 상업 시설을 채우고, 커뮤니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를 기다린다. 로우투노는 완공 이후 어떤 생태계가 작동해야 하는지를 먼저 그려보고, 그 생활이 가능한 공간을 함께 구상했다.
로우투노에서 에이루트 블록(Airut Block)으로
로우투노는 공모명이자 개발 구상 당시의 이름이었고, 실제 완공된 블록은 에이루트 블록(Airut Block), 또는 Airut: Energy and Innovation Block으로 불린다. 핀란드어 Airut는 '선구자(herald)' 또는 '전령(messenger)'을 뜻한다. 헬싱키시는 이 블록이 Low2No 개념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완공된 Airut는 헬싱키 잿카사리 지역에 위치한 연면적 29,400㎡(Sweco 자료 기준) 규모의 복합 주거블록이다. 주택·업무·상업·공용공간이 함께 들어서 있으며 약 500명이 거주한다. 시공은 SRV Rakennus Oy가 맡았으며, 건축·구조 디자인과 건물 설비 엔지니어링은 Sweco(당시 Optiplan)가 2013년부터 담당했다. 블록은 3층짜리 저층 주거동 1개와 고층 주거동 5개, 그리고 업무·상업 시설로 구성되며 2016년부터 2018년에 걸쳐 순차 준공되었다.
주택 구성에서도 평등이라는 원칙이 구현되었다. 일반 분양 주택, 임대 주택, 헬싱키시의 가격 규제 자가 주택인 히타스(Hitas) 주택이 같은 블록 안에 함께 들어섰다. 고소득층만의 친환경 주거가 아니라, 다양한 계층이 함께 지속가능한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에 담은 것이다.
Sweco의 개발 디렉터 유하 비흐마(Juha Vihma)는 이 블록을 "핀란드·독일·스페인 세 나라의 주거 문화가 결합된 복합체"라고 설명한다. 베를린의 Sauerbruch Hutton 건축사무소가 설계를 주도하고, 스페인 출신의 프로젝트 건축가 카를로스 알라르콘 알렌(Carlos Alarcón Allen)이 참여하면서 기존 핀란드 주거 방식에 없던 접근이 도입되었다. "전문가들이 진정한 상호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개발했다"는 비흐마의 설명처럼, 협업 자체가 이 블록의 건축적 성격을 결정했다.
에너지 측면에서는 옥상 태양광, 세대별 전기·온수·냉수·실내온도 측정, 클라우드 연계 소비 모니터링, 외출 시 일부 가전과 조명을 차단하는 home/away 스위치가 도입되었다. 소재 선택도 에너지 기술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블록 외벽의 단일체 벽돌 파사드(monolithic brick facade)는 저탄소·저에너지 소재 선택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비흐마는 "소재 제조 과정의 탄소 배출량과 건축 자재의 수명을 함께 고려했다"고 말한다. 재활용 소재, 친환경 콘크리트, 태양광 패널은 2009년 당시 주거 건축에서 드물게 쓰이던 선택이었다. 설계 과정에는 BIM(건물정보모델링)이 활용되었다. 비흐마는 BIM이 구조적으로 까다로운 지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설계 분야 간 협력을 가능하게 했으며, 프로젝트 전반에 걸쳐 실시간 비용 정보를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야심찬 건축의 요구와 가격 규제 주택의 현실을 함께 맞출 수 있었다."
초기의 이상이 그대로 구현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2012년 5월, Sitra 이사회는 이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철수를 공식 결정했고, 2013년 가을 개발권은 파트너사인 SRV와 VVO로 완전히 이전되었다. Sitra가 기획자로 있던 시기의 급진적 비전 — 규제·금융·문화적 장벽을 함께 시험하는 장기적 전환 프로젝트 — 은 민간 시행사 주도로 전환된 이후 상당 부분 약화되었다. 완성된 결과물만 보면 잘 지어진 친환경 주거단지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로우투노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문제의식은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도시생활은 어떤 경험의 구조를 필요로 하는가."
로우투노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로우투노는 오늘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① 우리의 탄소중립 정책에는 사람이 빠져 있는 것 아닐까?
한국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RE100·ESG는 기업 경영의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기술·설비·수치 중심이다. 얼마나 더 효율적인 장비를 보급할 것인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얼마로 높일 것인가. 로우투노가 2009년에 던진 질문, "사람이 실제로 저탄소 생활을 선택하게 하려면 어떤 경험 환경이 필요한가"는 한국 정책에서 아직 본격적인 자리를 얻지 못했다. 정책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면, 행동이 일어나는 맥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서비스디자인이 정책 설계에 필요한 이유다.
② 스마트시티 사업에 빠져있는 것은 무엇일까?
세종 스마트시티, 부산 에코델타시티 등 한국의 대형 스마트시티 사업은 세계적인 규모다. 그런데 이 사업들이 주로 묻는 질문은 "어떤 기술을 넣을 것인가"다. 로우투노처럼 "이곳에 살 사람들의 하루가 미래에 어떻게 펼쳐질까"를 먼저 상상하는 접근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사람은 꿈꾸고 기술은 이룹니다'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기술은 수단이다. 사람의 생활 여정이 설계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첨단 기술을 넣어도 쓰이지 않는 인프라가 된다. 이미 일부 스마트시티 시범 지구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③ 기존 공공주택 개발 방식은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일까?
LH, SH가 공급하는 공공주택은 면적·설비·분양가 중심으로 설계된다. 공용공간이 있어도 활성화되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 주민들이 실제로 어떤 생활 서비스를 언제 필요로 하는지를 먼저 설계에 반영하는 과정이 없기 때문이다. 로우투노의 접근을 빌리면, 공공주택 계획의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평면도 이전에 사용자 여정 지도가 먼저 나와야 한다. 공용면적을 얼마로 할 것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어떤 방식으로 필요하게 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④ 우리의 참여 행정은 공청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닐까?
한국의 주민 참여는 대부분 완공 직전의 공청회, 또는 설계안이 거의 확정된 후의 의견 수렴에 머문다. 로우투노의 Low2No Camp처럼,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그 안에서 살아갈 생활 서비스를 먼저 실험하는 방식은 낯설다. 참여 디자인은 의견 수렴 행사가 아니라 미래의 생활을 함께 그리고 미리 검증하는 과정이다. 이 구분이 정착되지 않으면, 주민 참여는 면피용 절차에 머물 수밖에 없다.
⑤ 부처 칸막이가 통합적 접근을 막고 있는 것 아닐까?
로우투노 같은 프로젝트가 한국에서 추진된다면 어디서 주관해야 할까. 도시개발은 국토부, 에너지와 서비스디자인은 산업부, 디지털은 과기부, 공공디자인은 문체부 소관이다. 사람의 생활 경험을 중심에 놓는 통합 접근은 현재 행정 구조에서 어느 부처도 자연스럽게 맡기 어렵다. 이것은 어떤 질문을 행정의 출발점으로 삼는가의 문제다. "각 부처의 소관 업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집행할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어디에서 선택을 바꾸며, 무엇이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질문이 행정 설계의 앞에 놓이기 위해서는 사람의 욕구를 중심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게 역할을 배분하는 컨트롤타워가 개별 행정부처 상위, 예를들면 국무조정실에 존재해야 한다. 실제 영국도 디자인 사고방식으로 수요자 중심 정책을 개발하는 폴리시랩(Policy Lab)을 2014년 국무조정실(Cabinet Office) 내부 조직으로 설립했다. 그 전제가 갖추어진다면 서비스디자인은 도구를 넘어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로우투노의 성과를 정량적 탄소저감 수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완공 이후의 실제 에너지 절감 효과나 거주자 행동 변화에 대한 종합적인 공식 사후평가 자료는 현재 공개된 것이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서 배울점은 분명하다.
건물의 에너지 성능만이 아니라 거주자의 행동까지가 디자인 대상이다
건물 평면도보다 먼저 사용자의 여정을 그려야 한다
스마트 기술은 장비가 아니라 행동 변화를 돕는 인터페이스여야 한다
공동시설은 남는 면적을 채우는 장식이 아니라 생활서비스의 거점이어야 한다
참여 디자인은 의견 수렴 행사가 아니라 미래의 생활을 검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것은 오늘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 스마트시티 사업, 공공주택 개발, 정부 서비스 설계에도 참고해야 할 교훈이다. 로우투노는 건물을 짓기 전에 사람의 하루를 그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전환이 이 프로젝트를 친환경 건축 사례가 아니라 서비스디자인의 중요한 사례로 만들었다. 지속가능성은 사람의 일상에서 작동해야 성과가 된다. 그것은 설계의 순서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건물을 짓기 전, 사람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걸까?
참고자료
- Sitra 공식 Low2No 프로젝트 페이지 https://www.sitra.fi/en/topics/low2no/ (아카이브 버전: https://arkisto.sitra.fi/en/topics/low2no/)
- Low2No 공식 블로그 http://www.low2no.org/ (2012년 이후 업데이트 중단)
- Helsinki Design Lab — Low2No 아카이브 https://www.helsinkidesignlab.org/dossiers/low2no.html
- Experientia — Low2No 프로젝트 페이지 https://www.experientia.com/portfolio_/low2no-shaping-the-future-of-sustainable-living/
- Experientia — Low2No 스마트 서비스 워크북 https://blog.experientia.com/low2no-smart-services-and-informatics-workbook-published/
- Low2No Camp https://demoshelsinki.fi/2011/05/18/demos-helsinki-proudly-presents-low2no-camp/
- Sweco Finland — Airut Block 프로젝트 페이지 https://www.sweco.fi/en/projects/airut-block/
※ 완공 이후 성과(실측 탄소저감률 및 거주자 행동 변화의 정량 성과 등)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2026.5.16. 윤성원 + 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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