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3. 12:24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산업재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을 잃고 있을까?
산업재해를 우리는 주로 ‘몇 명이 죽었는가’로 말한다. 사고사망자 수가 몇 명인지, 근로자 1만 명당 몇 명이 사망했는지를 나타내는 사고사망만인율이 얼마인지를 보고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 산업안전 수준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지표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일 때문에 사람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지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차이를 어떻게 측정하느냐는 안전정책뿐 아니라 안전디자인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일 때문에 발생하는 건강손실에는 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은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분진·가스·흄과 같은 유해물질 노출은 호흡기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음, 발암물질, 인간공학적 위험 등 다양한 직업위험 역시 질병과 장애, 사망의 원인이 된다.
사망자 수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
WHO와 ILO는 이런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2016년부터 직업 관련 질병과 손상의 부담을 공동으로 추정하는 방법론을 개발했고, 2021년 처음으로 「WHO/ILO Joint Estimates of the Work-related Burden of Disease and Injury, 2000–2016」을 발표했다.[1] 이 연구는 19개 직업위험요인과 관련 건강결과를 대상으로 세계·지역·국가별 부담을 같은 방법으로 비교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무엇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WHO·ILO의 2016년 추정에서 가장 많은 사망과 관련된 직업위험요인은 장시간 노동이었다. 약 74만 5천 명의 사망이 장시간 노동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됐다. 직업성 분진·가스·흄 노출은 약 45만 명, 업무상 사고·손상(occupational injuries)은 약 36만 3천 명이었다.[2]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업무상 사고·손상이 가장 큰 직업위험은 아니다. 그런데 측정 기준을 ‘몇 명이 죽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로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몇 명이 죽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로
WHO·ILO는 이를 DALY(Disability-Adjusted Life Years), 즉 장애보정생존연수로 계산한다.
DALY = YLL + YLD
YLL(Years of Life Lost)은 조기사망으로 잃은 삶의 기간이고, YLD(Years Lived with Disability)는 질병이나 장애 때문에 건강하게 살지 못한 기간이다. DALY 1은 결국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삶 1년의 손실’을 의미한다.[3]
이 방식이 산업안전에서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사망자 수는 사람이 죽었는지만 센다. 30세에 사망해도 1명이고, 70세에 사망해도 1명이다. 또 절단, 척수손상, 뇌손상, 중증 화상처럼 평생 장애를 남기는 사고도 사망하지 않았다면 사고사망자 수에는 잡히지 않는다.
DALY는 이 둘을 함께 본다. 일찍 사망하면서 잃은 삶은 YLL로, 살아남았지만 장애나 질병으로 잃은 건강한 삶은 YLD로 계산한다. 그래서 업무상 사고·손상의 부담은 사망자 수로 보았을 때보다 DALY로 보았을 때 훨씬 크게 나타난다.
WHO·ILO 추정에서 2016년 업무상 사고·손상으로 인한 사망은 약 36만 3천 명으로, 분석 대상 직업위험으로 인한 전체 사망 약 188만 명의 19.3%였다.
반면 업무상 사고·손상으로 발생한 건강생애 손실은 약 2,644만 DALY로, 분석 대상 직업위험으로 인한 전체 DALY 약 9,000만 년의 29.5%를 차지했다.[2]
즉 사망자 수로 보면 업무상 사고·손상은 분석 대상 직업위험으로 인한 전체 사망의 약 19%이지만, 죽음과 장애로 잃은 건강한 삶을 기준으로 보면 그 부담은 약 30%까지 커진다.
그림) 2016년 전 세계 직업위험으로 인한 사망과 건강생애 손실 중 업무상 사고·손상 비중

측정 기준이 바뀌면 산업안전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이 수치가 주는 착안점은 중요하다. 직업위험의 성격에 따라 그 영향을 평가하는 측정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이나 유해물질 노출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질병과 사망을 일으킨다. 반면 업무상 사고·손상은 갑작스러운 조기사망뿐 아니라 장기간 또는 평생 지속되는 장애를 남길 수 있다. 그래서 사고를 사망자 수만으로 평가하면 실제 건강손실의 상당 부분을 보지 못하게 된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로 몇 명이 죽었는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산업재해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고 있는가?”
사고의 경우에는, “사망과 장애로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이 사라지고 있는가?” 까지 물어야 한다.
이런 관점은 산업안전정책과 R&D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방식도 바꿀 수 있다. 발생빈도가 높은 사고를 우선할 것인지, 사망 가능성이 높은 사고를 우선할 것인지, 아니면 사망과 장애까지 포함해 가장 많은 건강한 삶을 빼앗는 위험을 우선할 것인지, 정책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의를 요구하는 것에서, 사고가 일어나기 어려운 조건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안전디자인에도 문제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업자에게 “주의하세요”, “꼭 확인하세요”, “실수하지 마세요”라고 요구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람은 피로하고 착각하고 실수한다. 위험을 알고 있어도 반복되는 작업에서는 순간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있고, 그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한 행동을 개인의 주의력에 맡기기보다 위험을 쉽게 알아차리게 하고, 안전한 행동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하며, 잘못된 행동 자체가 일어나기 어렵도록 제품과 설비, 작업환경, 정보, 인터페이스와 작업절차를 바꾸어야 한다.
산업재해로 잃는 것은 사망자 숫자만이 아니다. 일 때문에 일찍 끝나버린 삶이 있고, 살아남았지만 건강한 삶의 일부를 잃은 경우도 있다. 산업안전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 건강한 삶의 시간을 지키는 데 있다면, 앞으로는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지켰는가’까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안전디자인은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넘어, 건강한 삶의 손실을 줄이는 조건을 디자인하는 일이어야 한다.
2026.9.3. 윤성원 + 챗GPT

출처
[1] WHO·ILO, WHO/ILO Joint Estimates of the Work-related Burden of Disease and Injury, 2000–2016: Global Monitoring Report, 2021.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9789240034945
[2] WHO·ILO Joint Estimates 관련 공식 설명. 2016년 기준 장시간 노동 약 744,924명, 직업성 분진·가스·흄 노출 약 450,381명, 업무상 사고·손상 약 363,283명의 사망이 추정되었다. 업무상 사고·손상은 약 2,644만 DALY로 전체 직업 관련 DALY의 29.5%를 차지했다.
https://www.who.int/news-room/questions-and-answers/item/total-who-ilo-joint-estimates-of-the-work-related-burden-of-disease-and-injury--2000-2016
https://www.ilo.org/sites/default/files/wcmsp5/groups/public/%40ed_dialogue/%40lab_admin/documents/publication/wcms_819788.pdf
[3] WHO, DALY 개념 설명. DALY는 조기사망으로 인한 YLL(Years of Life Lost)과 질병·장애로 인한 YLD(Years Lived with Disability)를 합산한 지표이다.
https://www.who.int/data/gho/indicator-metadata-registry/imr-details/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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