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9. 3. 12:24ㆍ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사망자 수를 넘어 건강한 삶의 손실을 보는 산업안전정책
산업재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할 때 우리는 대개 사람 수를 센다. 한 해 몇 명이 산업재해를 당했는가, 몇 명이 사망했는가, 사고사망만인율은 지난해보다 낮아졌는가를 본다. 모두 중요한 지표이다. 특히 사람이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고를 줄이는 것은 산업안전정책이 가장 우선해야 할 목표이다. 그런데 사망자 수만으로 산업재해가 우리에게서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빼앗아 가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같은 사망 1명이라도 조기사망으로 잃는 삶의 기간은 다르다. 죽지 않았더라도 신체 일부의 기능을 잃거나 중증 손상으로 남은 삶의 상당 부분을 장애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몇 달에 걸쳐 치료와 재활을 받아야 하고, 이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사고 건수나 사망자 수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산업재해가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는 것은 결국 ‘사람의 수’만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몇 명이 죽었는가’에서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로
사망자 수와 사고사망률이 산업안전의 핵심지표인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망은 가장 치명적인 결과이며 연도별 변화나 업종 간 차이를 비교하기도 쉽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죽음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보여주지만, 그 죽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삶이 사라졌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사고에서 살아남았더라도 중증 손상이나 장애가 남는다면 이후 오랜 기간 건강한 삶의 일부를 잃게 된다.
이 문제는 산업재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건 분야에서는 질병과 사고의 영향을 사망자 수만으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오래전부터 ‘건강한 삶의 손실’을 측정해 왔다.
WHO와 ILO도 직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손실을 보다 전체적으로 보기 위해 2016년부터 공동 추정방법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공동추정을 정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고, 2021년 처음으로 「WHO/ILO Joint Estimates of the Work-related Burden of Disease and Injury, 2000–2016」을 발표했다. 첫 공동추정은 19개 직업위험요인과 31개 건강결과, 41개의 위험요인-건강결과 조합을 대상으로 세계·지역·국가별 부담을 동일한 방법론으로 추정했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지표가 DALY(Disability-Adjusted Life Year, 장애보정생존연수)이다.
DALY는 조기사망으로 잃은 생애기간인 YLL(Years of Life Lost)과 질병이나 장애로 인해 건강하게 살지 못한 기간인 YLD(Years Lived with Disability)를 합한 값이다. DALY 1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삶 1년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질문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다.
“몇 명이 죽었는가?”에서 “조기사망으로 몇 년의 삶을 잃었는가?”로, “몇 명이 다쳤는가?”에서 “그 부상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로 바뀐다.
사망과 부상을 ‘잃어버린 건강한 삶의 시간’이라는 하나의 기준에서 함께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측정 기준을 바꾸면 산업안전의 모습도 달라진다
WHO·ILO의 2016년 추정 결과는 이 관점 전환이 왜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분석 대상 직업위험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약 188만 명이었다. 이 가운데 업무상 사고·손상(occupational injuries)으로 인한 사망은 약 36만 3천 명으로 전체의 19.3%였다.
사망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망 약 74만 5천 명, 분진·가스·흄 노출 약 45만 명보다 작았다. 그런데 같은 위험을 DALY로 평가하자 모습이 달라졌다. 업무상 사고·손상으로 인한 건강생애 손실은 약 2,644만 DALY로, WHO·ILO가 평가한 전체 건강생애 손실의 29.5%를 차지했다. 직업위험요인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그림1) 2016년 전 세계 직업위험으로 인한 사망과 건강생애 손실 중 업무상 사고·손상 비중

업무상 사고·손상이 차지하는 비중: 사망자 수 기준 19.3% / 건강생애 손실(DALY) 기준 29.5%
※ WHO·ILO가 평가한 직업위험요인 기준, 2016년 추정
즉 사망자 수로 보면 업무상 사고·손상은 가장 큰 직업위험이 아니지만, 조기사망과 장애로 잃은 건강한 삶까지 계산하면 가장 큰 부담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순위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떤 위험을 중요하게 보게 되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사망자 수는 죽음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센다. DALY는 그 죽음 때문에 사라진 삶과, 죽지는 않았지만 장애와 질병으로 잃은 건강한 삶까지 함께 본다. 정책의 측정 기준은 결국 정책의 시야를 결정한다.
한국 산업재해 통계에서도 사망자만 보면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 문제는 한국의 산업재해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안전보건공단이 집계한 2019~2023년 제조업 자료에서 사고 발생형태별 사망자와 6개월 이상 요양 재해자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림2) 2019~2023년 한국 제조업 사고유형별 사망자와 6개월 이상 요양 재해자
- 끼임: 6개월 이상 요양 8,414명 / 사망 274명
- 떨어짐: 4,060명 / 198명
- 넘어짐: 3,850명 / 19명
- 물체에 맞음: 2,642명 / 94명
- 부딪힘: 2,147명 / 68명
- 절단·베임·찔림: 1,698명 / 4명
-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964명 / 0명
출처: 안전보건공단, 발생형태 및 재해정도·요양기간별 재해자 현황(제조업)
※ 6개월 이상 요양은 DALY나 YLD와 동일한 지표가 아니며,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재해의 규모를 보여주는 보조지표이다.
넘어짐은 5년간 사망자가 19명이었지만 6개월 이상 요양한 재해자는 3,850명이었다. 절단·베임·찔림은 사망자가 4명인 데 비해 6개월 이상 요양자는 1,698명이었다.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은 이 통계에서 사망자가 없지만 964명이 6개월 이상 요양했다. 사망자만 놓고 보면 이들 사고는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 치료를 필요로 한 재해까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이 자료가 한국의 건강생애 손실을 직접 측정한 것은 아니다. 6개월 이상 요양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어느 정도의 건강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이 자료는 사망자 수만으로 산업재해의 영향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누가 사망했고 얼마나 오래 치료받았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사고로 이후의 건강한 삶을 얼마나 잃었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를 넘어서는 또 하나의 측정 기준이 필요해진다.
무엇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정책과 R&D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사고사망자 수와 사고사망률을 DALY로 대체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고 건수는 위험의 빈도를 보여주고, 사망자 수와 사고사망률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모두 계속 필요한 지표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
이 기준이 추가되면 산업안전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사고가 자주 발생하지만 대부분 빠르게 회복되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빈도는 낮더라도 한 번 발생하면 사망이나 평생 장애로 이어지는 위험도 있다.
지금까지 사고의 빈도와 사망 여부를 주로 보았다면 앞으로는 사고 발생 가능성, 사망 가능성, 손상의 중증도, 장애 지속기간, 조기사망으로 잃는 생애기간까지 함께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산업안전 R&D에서는 여기에 하나의 질문이 더 붙는다.
“같은 자원을 투입한다면 어떤 위험을 줄일 때 더 많은 건강한 삶을 지킬 수 있는가?”
이것은 R&D의 목표를 기술개발 건수나 사고 건수 감소에서 ‘예방 가능한 건강생애 손실의 감소’까지 확장하는 관점이다.
아직 이를 국내 산업재해의 공식 성과지표로 바로 적용하기에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국내 산재통계와 요양·장해 데이터를 연결하고, 산업재해 특성에 적합한 YLL·YLD 산정방식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정책과 R&D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보완적 기준으로 연구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안전디자인도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지켰는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안전디자인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안전디자인은 위험을 알리는 역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작업자가 위험구역으로 잘못 들어가지 않게 하는 공간, 지게차와 보행자가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동선, 위험한 방향으로 조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인터페이스, 무리한 자세를 줄이는 작업환경, 사람이 실수하더라도 중대한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제품과 설비도 안전디자인의 대상이다. 이러한 디자인의 효과는 반드시 사망사고 감소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고 자체를 막을 수도 있고, 같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부상의 정도를 낮출 수도 있으며, 장기간 요양이나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을 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안전디자인의 성과를 사망자 수만으로 본다면 이러한 효과 가운데 상당 부분은 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안전디자인 역시 몇 개의 시설을 설치했고 몇 건의 사고를 줄였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 디자인으로 사고 발생 가능성이 얼마나 줄었는가.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의 중증도가 얼마나 낮아졌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의 손실을 예방했는가.
이런 질문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의 목표는 사람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것이다
사망자 한 명은 통계에서는 ‘1’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수십 년의 삶이 있을 수 있다. 재해자 한 명도 통계에서는 ‘1’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며칠 뒤 일상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수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누군가는 남은 삶을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 이 차이를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만으로는 충분히 표현하기 어렵다.
산업안전정책에서 사고사망자를 줄이는 목표는 앞으로도 가장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다만 그 목표를 포괄하는 더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사람이 일 때문에 생명과 건강한 삶의 시간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몇 명이 죽고 다쳤는가”와 함께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잃었는가”, 그리고 “우리의 정책과 기술과 디자인은 그중 얼마나 많은 건강한 삶을 지켜냈는가”까지 물어야 한다.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정책의 시야를 결정한다면, 이 질문은 산업안전정책과 R&D, 그리고 안전디자인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
2026.9.3. 윤성원 + 챗GPT
출처
[1] WHO·ILO, WHO/ILO Joint Estimates of the Work-related Burden of Disease and Injury, 2000–2016: Global Monitoring Report, 2021.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9789240034945
[2] WHO·ILO Joint Estimates 관련 공식 설명. 2016년 기준 장시간 노동 약 744,924명, 직업성 분진·가스·흄 노출 약 450,381명, 업무상 사고·손상 약 363,283명의 사망이 추정되었다. 업무상 사고·손상은 약 2,644만 DALY로 전체 직업 관련 DALY의 29.5%를 차지했다.
https://www.who.int/news-room/questions-and-answers/item/total-who-ilo-joint-estimates-of-the-work-related-burden-of-disease-and-injury--2000-2016
https://www.ilo.org/sites/default/files/wcmsp5/groups/public/%40ed_dialogue/%40lab_admin/documents/publication/wcms_819788.pdf
[3] WHO, DALY 개념 설명. DALY는 조기사망으로 인한 YLL(Years of Life Lost)과 질병·장애로 인한 YLD(Years Lived with Disability)를 합산한 지표이다.
https://www.who.int/data/gho/indicator-metadata-registry/imr-details/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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