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는 같은 사용자의 꿈을 꾸는가?

2026. 8. 3. 00:03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디자인 분야마다 다른 사용자 조사의 깊이와 범위

“사용자 조사가 중요해.”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에서 늘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브랜드디자이너, 제품디자이너, UX디자이너에게 이 말을 하면 서로 다른 활동을 떠올린다. 브랜드디자이너는 소비자 인터뷰나 설문을 통한 브랜드 인식 조사를 생각한다. 제품디자이너는 제품을 실제로 사용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사용성을 평가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UX디자이너는 소프트웨어 사용성 테스트와 과업분석을 생각한다. 서비스디자이너는 현장 관찰조사와 섀도잉을 떠올리고, 이용자뿐 아니라 직원, 관리자, 협력기관 관계자까지 조사대상에 포함한다.
같은 ‘사용자 조사’라는 말을 쓰지만 실제로는 조사대상과 방법, 도달해야 할 깊이와 살펴야 할 범위가 다르다.

디자인 분야마다 무엇을 조사하는가

디자인 분야 주로 사용하는 사용자 조사 방법 조사하는 내용 조사의 깊이와 범위
시각·정보디자인 가독성 평가, 이해도 테스트, 시선추적, 선호도 조사 정보를 어떻게 보고 읽고 이해하는가 특정 화면·매체·정보의 지각과 이해를 집중적으로 조사
브랜드디자인 소비자 인터뷰, FGI, 설문조사, 브랜드 인식 조사, 소셜미디어·리뷰 분석 브랜드에 어떤 이미지와 의미를 부여하는가 태도·선호·정체성·문화적 의미를 조사하되 일반 실무에서는 인식 조사 중심
제품디자인 관찰조사, 맥락조사, 인체공학 조사, 과업분석, 사용성 테스트, 프로토타입 평가 제품을 어떻게 잡고 조작하며 사용하는가 신체·감각·행동과 물리적 사용환경을 매우 구체적으로 조사
UX·인터랙션디자인 사용성 테스트, 사용자 인터뷰, 맥락조사, 과업분석, 카드소팅, 로그분석, A/B 테스트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하고 과업을 수행하는가 멘탈모델·인지부하·오류·행동흐름을 정밀하게 조사
서비스디자인 현장 관찰조사, 섀도잉, 서비스 사파리, 맥락조사, 심층인터뷰, 다이어리 연구, 참여관찰, 직원·이해관계자 인터뷰 경험이 여러 접점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용자의 경험부터 직원의 업무, 조직 운영과 이해관계자 관계까지 폭넓게 조사
정책·시스템디자인 정책 민족지, 현장관찰, 참여관찰, 시민·공무원·기관 관계자 인터뷰 행동과 경험을 반복해서 만드는 제도와 구조는 무엇인가 개인 경험을 넘어 권한·자원·제도·행위자 관계와 장기적 영향을 조사

 

브랜드디자인은 소비자를 얼마나 깊이 조사하는가

브랜드는 사람들이 제품과 조직에 부여하는 의미와 정체성을 다룬다. 그렇다면 브랜드디자인은 소비자의 삶과 문화를 매우 깊게 조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브랜드 아이덴티티 프로젝트에서는 소비자 인터뷰, 설문, FGI와 브랜드 인식 조사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민족지, 참여관찰, 가정방문과 같은 심층 현장조사가 일반적인 절차라고 보기는 어렵다.

Sarah Kirby-Ginns는 2024년 Royal College of Art 박사논문에서 영국의 전문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들이 소비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사했다. 연구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소비자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실제 소비자를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키기보다 디자이너가 소비자를 상정하고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자신의 경험과 편향이 소비자에 대한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성찰할 방법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 연구만으로 브랜드디자인 전반에서 심층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국의 일부 전문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연구이며, 다른 디자인 분야와 직접 비교한 것도 아니다. 다만 브랜드디자인에서의 소비자 이해가 현장관찰보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의 해석에 더 크게 의존할 수 있다는 점은 보여준다. 브랜드디자인은 소비자를 모르는 분야가 아니다. 다만 소비자를 직접 관찰하기보다 소비자를 대신 상상하는 방식에 더 익숙할 수 있다.

* 출처: Sarah Kirby-Ginns, With the Participatory Consumer Audience in Mind: Exploring and Developing Professional Brand Identity Designers’ Reflexive Practice, Royal College of Art, 2024.
https://researchonline.rca.ac.uk/5654/

디자인 스튜디오가 말하는 조사와 실제 조사의 차이

AnneMarie Dorland는 2016년 디자인 스튜디오가 홍보하는 민족지와 디자이너가 실제 수행하는 조사를 비교했다. 연구에는 브랜드·그래픽·경험·서비스디자이너 27명이 참여했다.
디자인 스튜디오들은 민족지를 숨겨진 사용자 욕구를 발견하고 새로운 디자인 기회를 찾는 전문적인 방법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장기간의 현장연구보다 짧은 관찰, 역할체험, 디자이너 자신의 경험과 기존 자료를 혼합하는 경우가 많았다. Dorland는 이를 무조건 부실한 조사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짧은 프로젝트 기간과 제한된 예산 안에서 디자인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 변형된 실무 방식일 수 있다고 보았다. 분명한 것은 디자인 스튜디오가 ‘민족지’라고 부르는 조사가 실제로는 짧은 관찰과 체험, 직관을 결합한 실용적 조사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을 전통적인 민족지와 동일하게 부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간의 현장참여, 문화적 맥락에 대한 깊은 해석과 연구자의 편향에 대한 성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사용자 조사의 이름과 실제 깊이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출처: AnneMarie Dorland, Tell Me Why You Did That: Learning “Ethnography” from the Design Studio, EPIC 2016.
https://www.epicpeople.org/learning-ethnography-design-studio/

제품디자인은 행동을 가까이에서 본다

제품디자인은 사용자의 신체와 행동을 구체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사용자가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는지만 들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제품을 어떻게 잡는지, 어느 방향으로 힘을 주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어느 순간 실수하거나 불편을 감수하는지를 실제 사용 상황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제품디자인에서는 관찰조사, 맥락조사, 인체공학 조사, 과업분석과 프로토타입 평가가 중요하다.
제품디자인의 조사범위는 서비스디자인보다 좁을 수 있지만 깊이가 얕은 것은 아니다. 손의 움직임, 힘의 방향, 시야와 자세까지 매우 정밀하게 조사한다. 제품디자인은 한 사람의 신체와 행동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분야이다.
다만 제품이 서비스와 결합되면 조사범위도 달라져야 한다.
2025년 Design Science에 발표된 연구는 숙련된 제품디자이너 56명이 제품과 제품-서비스시스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을 비교했다. 제품디자인에서는 해결안의 구조를 구체화하는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제품-서비스시스템 디자인에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기능과 디자인 과정을 구성하는 활동이 더 두드러졌다.
제품 하나를 디자인할 때보다 서비스 요소와 이해관계자를 함께 고려할 때 문제의 경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제품디자이너가 서비스디자인으로 쉽게 전환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만 서비스와 이해관계자가 포함되면 숙련된 제품디자이너도 기존과 다른 사고와 조사범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 출처: A. Neramballi et al., Is Product-Service System Designing Different from Product Designing? A Cognitive Study of Experienced Product Designers, Design Science, 2025.
https://www.cambridge.org/core/journals/design-science/article/is-productservice-system-designing-different-from-product-designing-a-cognitive-study-of-experienced-product-designers/9D8E4435F1C33A661C60E46B1C7F1C4E

UX디자인은 과업과 멘탈모델을 정밀하게 본다

UX디자인은 사용자가 디지털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하고 과업을 수행하는지를 조사한다.
사용자가 어느 메뉴를 예상하는지, 어떤 정보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는지, 어느 단계에서 오류를 내거나 포기하는지를 분석한다. 사용성 테스트, 과업분석, 카드소팅, 로그분석과 A/B 테스트가 발달한 이유이다.
UX디자인은 특정 접점에서 사용자의 행동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데 강하다. 사용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뿐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클릭하고 어디에서 멈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조사범위가 화면과 직접 사용자에게 머물면 그 문제를 만드는 조직의 업무와 제도를 놓칠 수 있다.
사용자가 같은 정보를 여러 번 입력하는 이유가 화면의 문제가 아니라, 부서마다 서로 다른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UX디자인은 접점의 문제를 잘 찾지만, 서비스디자인은 그 접점을 만들어낸 조직의 문제까지 조사해야 한다.

서비스디자인은 개인과 관계를 함께 본다

서비스디자인의 사용자 조사는 이용자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비스는 이용자 혼자 경험하지만 조직이 혼자 제공하지는 않는다. 직원, 관리자, 협력기관, 기술시스템과 제도가 함께 작동해 하나의 경험을 만든다.
병원서비스를 개선한다면 환자만 인터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보호자, 의료진, 접수직원, 관리자와 외부 협력기관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환자가 겪는 불편이 직원의 태도보다 업무량, 부서 간 정보단절이나 행정규정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비스디자인에서는 현장 관찰조사, 섀도잉, 서비스 사파리, 맥락조사, 다이어리 연구와 이해관계자 인터뷰가 중요하다.
제품디자인이 한 사람의 행동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서비스디자인은 그 행동을 둘러싼 사람과 조직의 관계까지 추적한다.
서비스디자인이 다른 분야보다 사용자를 더 깊게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제품디자인은 신체와 행동을 더 정밀하게 보고, UX디자인은 과업과 오류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며, 브랜드디자인은 의미와 정체성을 더 섬세하게 해석할 수 있다.
서비스디자인의 특징은 개인의 경험을 깊게 보는 동시에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관계를 넓게 본다는 것이다.

서비스디자인으로의 전환비용

현재까지 브랜드·시각·제품·UX디자이너에게 동일한 서비스디자인 과제를 주고 조사방법과 성과를 직접 비교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 특정 분야가 서비스디자인에 본질적으로 더 적합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분야별 조사관행을 비교하면 하나의 가설은 가능하다.
제품디자인과 UX디자인은 이미 사용자의 행동과 사용맥락을 관찰하고 검증하는 데 익숙하다. 서비스디자인으로 이동할 때에는 기존 조사방법을 버리기보다 조사대상과 범위를 확대하면 된다.
사용자에서 직원과 관리자로, 제품과 화면에서 전체 서비스 여정으로, 개별 행동에서 조직의 업무와 이해관계자 관계로 넓혀가는 것이다.
반면 브랜드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은 의미 구성, 표현과 정보전달에는 강하지만 현장관찰, 섀도잉, 직원 조사와 다수 이해관계자 연구는 새롭게 익혀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분야의 능력 차이가 아니다. 기존 전문성과 서비스디자인이 요구하는 조사방식 사이의 거리이다.

결론

모든 디자인이 사용자를 이야기하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를 연구하지는 않는다.
브랜드디자인은 브랜드에 부여하는 의미와 정체성을 조사한다. 제품디자인은 신체와 사용행동을 관찰한다. UX디자인은 멘탈모델과 과업수행을 분석한다. 서비스디자인은 개인의 경험뿐 아니라 그 경험을 만들어내는 직원, 조직과 이해관계자의 관계까지 조사한다.
따라서 디자인 분야마다 사용자 조사의 내용, 방법, 깊이와 범위가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분야의 조사 수준을 쉽게 과소평가하거나, 자신이 익숙한 조사방법을 모든 디자인에 적용하게 된다.
사용자 조사는 하나의 공통된 절차가 아니다. 무엇을 디자인하는가에 따라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관찰하며,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가 달라진다.

2026.8.2. 윤성원 + 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