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제 일을 하는데 왜 택시는 오지 않을까

2026. 9. 21. 07:30디자인/디자인·예술이야기

택시는 충분히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페이스북에서 카카오택시를 이용했던 한 승객의 불만을 읽었다. 일반호출이 잡히지 않아 추가요금을 내고 블루를 호출했는데, 3.5km나 떨어진 택시가 배정돼 7분 넘게 기다렸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며칠 전 기차 출발시간이 빠듯한 상태에서 카카오T를 불렀다. 택시는 배차됐지만 어쩐 일인지 도착 예정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서는 여러 대의 택시가 다른 승객을 태우고 떠났다. 하지만 이미 배차된 택시가 오고 있어 취소하고 다시 호출하기도 어려웠다. 기차를 놓쳤다. 당시에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나니 그날의 당황스럽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택시는 충분히 있었고 기사들도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필요한 택시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각 부분은 움직이고 있는데 전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카카오T는 거리만이 아니라 호출 수락 가능성과 예상 도착시간 등을 종합해 배차한다고 설명한다. 과거 가맹택시 우대 논란도 있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던 만큼 내 경험의 원인을 특정 배차정책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알고리즘일까. 알고리즘을 만든 개발자일까. 배차정책을 정한 기획자일까. 아니면 회사일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커질수록 브레이크보다 액셀이 강해진다 

플랫폼에는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가 작동한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공급자가 모이고, 공급자가 많아지면 다시 이용자가 늘어난다. 네트워크 효과는 플랫폼의 편리함을 키운다. 그러나 특정 플랫폼의 시장지배력과 이용자의 전환비용이 함께 높아지면 이용자와 공급자가 불만을 느껴도 쉽게 떠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싫으면 떠난다’는 시장의 가장 단순한 제동장치가 약해지는 것이다.
외부의 제동이 약해지는 동안 조직 내부에서는 다른 힘이 강하게 작동한다. 매출, 성장률, 거래액, 전환율, 영업이익 같은 성과지표다. 관료제에서 수단이 목적화되는 현상을 설명한 Merton의 목표 대체(goal displacement)처럼,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든 수단이 어느 순간 목적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의 이동을 편리하게 한다’는 목적은 측정하기 어렵지만 ‘거래액을 10% 늘린다’는 목표는 명확하다.
조직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을 관리한다. 처음에는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숫자를 보지만, 어느 순간 숫자를 움직이기 위해 고객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 특별히 탐욕스러워질 필요도 없다. 각자가 주어진 지표를 성실하게 최적화하는 것만으로 조직 전체가 처음의 목적에서 멀어질 수 있다. 시장권력은 힘을 키우고, 성과지표는 그 힘이 움직일 방향을 정한다.

각 부분은 합리적인데 전체는 난폭해질 수 있다

개발자는 알고리즘을 개선하고, 기획자는 이용률을 높이고, 영업은 거래를 늘리고, 재무는 수익성을 관리한다. 각각의 판단은 자기 자리에서는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다. Herbert Simon이 말한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처럼 사람은 모든 정보와 결과를 고려해 판단할 수 없다. 큰 조직은 이 한계를 분업으로 해결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각자는 전체 결과의 일부만 보게 된다.
알고리즘의 작은 조정, 요금정책의 변화, 화면의 선택구조, 성과목표가 서로 결합한다. 어느 한 사람이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이 조직 전체에서 나타날 수 있다. 각 부분은 합리적인데 전체는 처음의 목적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큰 조직은 구성원 개개인에게는 없었던 행동 특성을 갖기 시작한다. 야수는 사람들 가운데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권력은 커지는데 책임은 작아진다

그렇다면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을 때 누군가는 멈춰 세우지 않을까? 책임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을 설명할 때 종종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다. 여러 집행자의 총 가운데 일부에 공포탄을 넣어 누구의 총알이 사형수를 죽였는지 알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내 총에 공포탄이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사람이 결과에 관여할수록 각자가 느끼는 책임은 작아진다. 큰 조직의 결과 역시 수많은 결정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개인의 책임을 없애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과 그 결과를 체감하는 책임감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상한 비대칭이 생긴다. 권력은 조직에 집중되는데 책임은 사람들 사이로 분산된다. 시장권력과 성과지표가 액셀러레이터라면, 책임분산은 브레이크를 약하게 만든다.

왜 택시는 오지 않을까

그날의 이상한 배차를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 알고 싶었다. 알고리즘인가, 개발자인가, 기획자인가, 경영자인가. 각자의 판단은 합리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판단들이 연결되면서 어느 한 사람도 의도하지 않은 조직의 행동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조직의 결정이 조직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플랫폼이 커지면 그 시스템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사고팔고, 일하는 방식을 움직이는 사회의 일부가 된다. 각자가 자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조직 전체는 수요자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은 제 일을 하고 있는데, 택시는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챗GPT

2026.9.21. 윤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