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5. 03:02ㆍ서비스디자인/정책디자인
정책디자인의 역할과 과제
정책디자인이 지속되기 위해 정부의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 디자인실장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실장은 2026년 8월13일, 2026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 정책디자인연구회 세션에서 <정책디자인의 역할과 과제>라는 제목으로 정책디자인이 일회성 프로젝트나 일부 공무원의 혁신적 시도에 머물지 않고 정부의 지속적인 일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해결해야 할 구조적 과제를 제시했다. 발표는 정책디자인이 실제 정부 안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시간, 사람, 제도라는 세 가지 문제로 정리하고 각각 공직 순환보직,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직제, 공공부문 디자인 체계의 문제를 연결했다.
윤성원은 2025년 한국정책학회 정책디자인연구회에서 「모두를 위한 정책디자인」을 발표하며 공공서비스의 기본값 재조정, 정책디자인랩 제도화, 난제해결 디자인 프로젝트, 수요자 경험 기반 평가체계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이 발표는 그 논의의 연장선에서, 그러한 시도가 실제 정부 안에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책의 내용뿐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정부의 구조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관련 자료 : 2025년 발표 「모두를 위한 정책디자인」 보기
1. 시간 — 정책의 생애주기와 공무원의 보직기간이 맞지 않는다
첫 번째 문제는 공직의 순환보직이다. 윤성원은 오랫동안 공공부문에 서비스디자인을 확산하는 과정에서 사업 담당자가 계속 바뀌고 경험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정책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획해 예산을 확보하고, 실행한 뒤 결과를 확인해 개선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안에 자리를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부서에 온 담당자는 전임자가 전년도에 기획하고 예산을 확보한 사업을 실행한다. 동시에 업무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다음 해 사업과 예산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미 해왔던 사업을 반복하는 것이 실패할 위험이 적고 결재를 받기도 쉽다. 1년 정도 지나 현장의 문제를 이해하고 “다음에는 이렇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생겨도 이미 다음 해 예산은 결정돼 있다. 그리고 그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점이 되었을 때는 담당자가 다른 부서로 옮겨갈 수 있다.
윤성원은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보았다. 전임자가 기획한 사업을 현재 담당자가 집행하고, 현재 담당자가 기획한 사업은 다음 사람이 집행하는 구조에서는 한 사람이 자신의 판단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공직에서는 여러 업무를 경험하는 것이 관리자로 성장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며 전문성을 쌓는 것이 개인의 경력에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와 대비되는 극단적인 사례로 일본 요코하마시의 도시디자인 행정을 소개했다. 구니요시 나오유키(国吉直行)는 1970년대부터 약 40년 동안 요코하마시 도시디자인 업무를 지속적으로 담당하고 퇴직 이후에도 관련 활동에 참여했다. 도로, 건축, 공원, 역사자산, 민간개발 등 부서와 사업을 넘어 도시디자인을 조정하면서 시장과 조직, 개별 사업이 바뀌어도 일관된 디자인 원칙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사례다. 이를 “사람의 지속성 → 역량의 축적 → 디자인의 일관성 → 도시의 정체성”으로 정리했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순환보직하는 제도를 개선해 전문성이 특히 필요한 정책분야에 대해서는 정책의 기획·실행·평가라는 한 생애주기를 경험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일하도록 하고,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 경력도 인정받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2. 사람 —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정부 안에 남을 수 있는가
두 번째 문제는 정책디자인을 실제로 수행할 사람과 조직이었다. 한국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인 사업이 오랫동안 추진됐고 국민디자인단과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됐지만, 정작 이 일을 정부 안에서 지속적으로 담당하는 전문직무와 경력경로는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발표에서는 2020년 전후 일부 중앙·지방정부에서 공공서비스디자이너가 임기제·별정직 형태로 채용된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국민디자인단과 같은 사업을 지자체 내부에서 담당할 전문인력이 부족해 별도 인력을 채용했지만, 이들이 어느 부서에 배치되었느냐에 따라 역할의 가능성이 크게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도시·환경·시설물 중심의 기존 공공디자인 부서에 배치된 경우 정책과 서비스의 문제를 다루거나 다른 부서를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반면 세종시 김세은 정책디자이너의 경우 기획·조정 기능과 가까운 조직에 배치돼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여러 정책과제를 다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공부문의 디자인 역량은 현재 대체로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시설·환경·홍보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존 디자인 전담조직, 두 번째는 최근 서울시, 부산시 등 일부 지방정부에서 나타나는 기관장 직속 총괄디자이너, 세 번째는 서비스와 업무방식, 정책 등 조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전담 디자인 조직이다. 발표에서는 국내의 많은 기관이 첫 번째 단계에 있고 일부 지방정부가 두 번째 형태를 시도하고 있지만, 세 번째와 같은 조직은 아직 국내 공공부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총괄디자이너의 등장은 디자인이 개별 시설물이나 결과물을 만드는 역할에서 벗어나 기관의 리더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사업의 앞단에 관여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외부 전문가 한 사람의 역량에 의존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정책디자이너 또는 공공서비스디자이너라는 전문직무와 전담팀을 정부조직 안에 만들고 정책디자인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발표 이후 토론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김아미 박사는 국민디자인단처럼 디자이너가 계속 외부자의 위치에서 정부와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디자인이 조직 내부의 중요한 정책과제와 연결되고 정부의 일상적인 업무 안에서 재해석될 때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승호 교수도 공공부문에 디자인 인력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에 이미 많은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지만 환경시설물에 국한된 부서업무에 묶여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력을 단순히 늘리기보다 기존 디자인 인력이 조직 전체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구조로 이동하는 것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3. 제도 — 정책도 ‘공공디자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세 번째는 공공부문에서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제도화하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윤성원은 한국의 디자인정책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의 「산업디자인진흥법」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는 서로 다른 법체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현행 디자인 법체계의 문제는 하나의 디자인 활동을 ‘산업디자인’과 ‘공공디자인’이라는 상호배타적 영역처럼 분할해 놓았다는 데 있다. 오늘날 서비스디자인·안전 디자인·정책디자인처럼 산업과 공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이 확대되면서 이 구분은 실제 정책현장과 맞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두 법률을 디자인의 개념을 하나로 통합한 국가 차원의 디자인진흥법으로 재편하고, 특정 부처에 귀속되지 않는 범정부적 추진체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안으로 국무총리·국무조정실 체계를 검토할 수 있다.
윤성원은 공공부문 디자인 영역에 대한 정부의 접근을 비교할 사례로 영국 정부의 '공공부문 디자인 효과 실증 보고서 Public Design Evidence Review(PDER)'를 소개했다. 영국 정부가 말하는 Public Design은 거리시설물이나 공공시설물만이 아니라 정부가 정책과 서비스를 시민 중심으로 개발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디자인 활동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그는 정부가 사용하는 ‘공공디자인’이라는 용어의 범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디자인이라는 말이 공공시설과 스트리트 퍼니처 중심으로 이해된다면 서비스나 조직, 정책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공공디자인의 범위를 시설과 환경에서 서비스, 조직, 정책까지 확대하고 이에 맞게 관련 법과 제도의 정의와 체계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산업디자인과 공공디자인으로 분리된 법체계는 장기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제시에 대해 토론에서 김선희 교수는 현재 두 제도가 법률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령이나 총리령으로 옮기는 것을 ‘상위 제도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과 제도의 수준뿐 아니라 어떤 범정부적 조정구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정책디자인의 세 가지 조건 — 시간, 사람, 제도
윤성원은 발표 마지막에서 세 가지 과제를 다시 시간, 사람, 제도로 정리했다.
시간의 측면에서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의 보직기간을 정책의 생애주기와 연결해 정책을 기획한 사람이 실행과 평가까지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람의 측면에서는 공공서비스디자이너의 직무와 전담팀을 제도화하고 정책디자인을 담당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제도의 측면에서는 공공디자인의 대상을 시설·환경에서 서비스·조직·정책까지 확대하고, 이에 맞게 관련 법과 제도의 정의와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디자인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무원의 인사·평가·승진제도, 조직 간 사일로, 행정의 전문성 등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배유일 교수는 순환보직이 우리나라의 계급제 공무원제도와 부패방지 등 나름의 이유를 갖고 발전해온 제도라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실제 연구 과정에서 과거 담당자가 불과 2년 전에 자신이 수행했던 사업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정책의 지속성과 학습에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거대한 제도개혁만 기다리기보다 QR코드를 활용한 현장점검 사례처럼 작은 행정혁신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선희 교수는 정책디자인을 최고 의사결정자의 관심에 의해 탑다운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시민과 직접 만나는 복지·생활서비스처럼 정책디자인의 효과를 체감하기 쉬운 영역에서부터 성과를 만들어가는 바텀업 방식도 함께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여소연 연구자는 국민디자인단 퍼실리테이터 경험을 바탕으로 워크숍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져도 짧은 사업기간과 부서 간 사일로 때문에 실행과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고, 역할은 있지만 권한이 없는 현행 구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발표는 이미 시도되고 있는 정책디자인이 정부 안에서 지속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를 다룬 발표였다. 정책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 그 경험을 전문성으로 축적할 사람과 조직, 그리고 서비스와 정책까지 디자인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발표의 핵심 제안이었다.
참고한 자료
윤성원,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혁신 전략으로서 정책디자인의 역할과 과제」, 2026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 정책디자인연구회 발표자료, 2026.8.13.
2026 한국정책학회 정책디자인연구회 발표·토론 녹취, 202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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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 정책디자인연구회 세션
2026.8.13.(목) 13:00~14:20 (80분)
장소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B2 학습연구실 (12분과)
사회 | 배유일 동아대학교 교수
주제 1. 싱가폴 정부 내 정책디자이너의 연결적 행위주체성에 대하여 - 김아미 성균관대학교 국정평가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주제 2. 공공서비스디자인을 넘어 정책디자인으로: 세종시 사례 - 김세은 전 세종시 공공서비스디자이너
주제 3. 정책디자인의 역할과 과제 - 윤성원 한국디자인진흥원 서비스안전 디자인실장
* 정책디자인의 시대로의 전환과 과제 - 2026 한국정책학회 하계학술대회 중 정책디자인연구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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