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서비스디자인 30년: 작업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 — 비르기트 마거와의 대담

2026. 9. 30. 01:23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소식

비르기트 마거는 심리학과 조직개발을 바탕으로 제품 중심 기업의 고객·솔루션 중심 전환에 참여하다가 1995년 서비스디자인 교수가 되었으며, 교육과정 개발과 함께 졸업생이 일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힘썼다고 설명합니다. 초기 서적과 지멘스의 서비스 가치 체험 보드게임, 루프트한자의 승객 경험 스토리보드를 통해 서비스디자인의 기틀 형성과 기업 현장으로의 확산을 되짚고, 국제 네트워크와 콘퍼런스, 전문지가 공동체와 공통의 이해를 형성한 과정을 소개합니다.
이후 서비스디자인의 관심은 비즈니스 가치, 실행과 성과 측정, 디지털·아날로그 경험의 연결, AI 활용과 인간의 역할로 확장되었으며, AI의 효율성과 한계뿐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공감의 진정성에 관한 질문도 제기합니다.
마거는 서비스디자이너를 ‘행동의 건축가’로 표현하며, 여정지도나 퍼소나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고 조직 안에서 변화를 촉발하는 지점을 찾아 여러 분야의 에너지를 조율하고 서비스 제공자와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서비스디자인 30년: 작업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 — 비르기트 마거와의 대담

원제: 30 Years of Service Design: The Artifacts and the Stories, with Birgit Mager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eqDCmeDrxw
채널: Smaply
공개일: 2026년 9월 10일
전체 번역 : 챗GPT로 번역했습니다. 생략,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본 영상을 봐주세요.


영상 소개글 및 안내 번역 (유튜브에서 발췌)
비르기트 마거(Birgit Mager)는 1995년 세계 최초의 서비스디자인 교수가 되었습니다.
최근 퇴직한 그는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지난 30년간의 작업물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독일 최초의 서비스디자인 서적, 오스트리아의 스키 산장에서 디자인한 지멘스 보드게임, 2001년 9월 10일 발표한 루프트한자 스토리보드 등을 마르크에게 소개합니다.
이 작업물들을 살펴보면서 서비스디자인이 기틀 형성에서 확산, 비즈니스 가치, 디지털화와 AI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온 과정을 되짚고, 지금도 서비스디자이너를 무엇보다 사람의 행동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콘퍼런스 2025, 독일 프랑크푸르트, 2026년 10월 28~30일
‘SMAPLY2026’을 사용하면 모든 종류의 콘퍼런스 입장권에 10%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Service Design Network):
https://service-design-network.org/

참여자 소개
비르기트 마거(Birgit Mager) — 대담 참여자
1995년 독일 쾰른국제디자인학교(KISD)에서 세계 최초의 서비스디자인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서비스디자인의 교육·연구·실무 발전에 참여해 온 연구자이자 교육자입니다.
비영리 국제단체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SDN)의 공동창립자이자 회장입니다.
2006년에는 쾰른응용과학대학교에 서비스디자인 연구센터 ‘세데스 리서치(sedes research)’를 설립했으며, 도이체텔레콤, 도이체방크, 쾰른시 등과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 전문지 『터치포인트』와 SDN 아카데미의 공동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번 대담에서는 최근 교수직에서 퇴직했다고 밝히며, 연구실에서 발견한 작업물들을 통해 자신의 활동과 서비스디자인의 발전 과정을 돌아봅니다.
공식 소개: https://www.sdn-academy.org/trainerprofiles/birgit-mager

마르크 스틱도른(Marc Stickdorn) — 진행자
서비스디자인과 고객여정 관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저자이자 교육자이며, 고객여정 관리 소프트웨어 기업 스맵플리(Smaply)의 공동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입니다.
『디스 이즈 서비스디자인 씽킹(This is Service Design Thinking)』과 『디스 이즈 서비스디자인 두잉(This is Service Design Doing)』의 공동저자입니다.
서비스디자인을 조직의 지속적인 운영과 의사결정에 연결하는 여정 관리(journey management)를 주요 주제로 다루며, 팟캐스트 〈디스 이즈 저니 매니지먼트〉를 진행합니다.
공식 소개: https://www.smaply.com/about


대담 전문 번역

마르크 스틱도른(Marc Stickdorn):
〈디스 이즈 저니 매니지먼트(This is Journey Management)〉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마르크 스틱도른입니다.
오늘 모신 분은 사실 별도의 소개가 필요하지 않은 분입니다.
비르기트 마거 교수입니다.
비르기트 마거는 1995년 세계 최초의 서비스디자인 교수가 되었습니다.
최근 교수직에서 퇴직했고, 연구실을 정리하다가 서비스디자인의 30년 역사를 담은 수많은 작업물과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오늘 에피소드에서는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서 30년 동안 서비스디자인을 해 온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즐겁게 들어주십시오.
비르기트, 오늘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비르기트 마거:
마르크,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많은 분이 이미 비르기트를 알고 계시겠지만, 이번 기회에 직접 조금 더 충분히 소개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소개를 하시면서, 오래전에 어떻게 서비스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때가 언제였는지도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비르기트 마거: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 인생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조금은 마법 같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리학을 공부했고 조직개발과 인적자원개발에 집중했습니다.
문제가 생긴 뒤 해결하기보다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을 더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조직과 인적자원을 다루면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했던 방향입니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일을 맡은 곳은 휴렛팩커드(Hewlett-Packard)였습니다.
아마 1988년에 일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당시 저는 조직개발 담당자로서 세 개의 조직 단위를 맡았고, 그중에는 의료사업 부문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모든 산업이 제품 중심에서 솔루션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크게 유행하던 말이 바로 ‘솔루션’이었습니다.
그 전환은 엄청난 과제였습니다.
조직은 기술에 집중하고, 생산 공정을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든 다음, 마지막에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출하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대금을 지급하면 고객과의 관계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고객이 그 제품으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해야 했습니다.
또 공급자로서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묶어야 고객이 수리, 유지보수, 업데이트 등의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조직 안의 많은 구조와 프로세스를 바꿔야 했고, 사람들의 태도와 문화도 바뀌어야 했습니다.
더 이상 생산 부문 내부의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경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봐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 역할이었고, 저는 그 일을 정말 즐겼습니다.
그런데 독일을 조금 아신다면, 휴렛팩커드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정확히는 뵈블링겐에 있습니다.
우리가 슈바벤이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슈바벤 사람들은 라인란트 사람들과 사고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라인란트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느긋하다고 할까요, 그런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쾰른으로 돌아가 아주 오래된 가족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이끄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4711’이라는 기업인데,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일도 제품 중심에서 시장과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경영 정상화 작업을 하던 중 제 인생을 정말 바꿔 놓은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미하엘 에를호프(Michael Erlhoff)입니다.
그를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당시 그는 쾰른국제디자인학교(Köln International School of Design, KISD)의 초대 학장이었습니다.
그는 디자인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지금 보아도 여전히 혁신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디자인계에 영원히 남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생각한 디자이너의 역할은 사물을 예쁘게 만들거나, 조금 더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디자이너는 이 세상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태적 문제, 사회적 문제, 경제적 문제 같은 것들입니다.
디자이너도 망치밖에 모르면 온 세상이 못으로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픽디자이너라면 늘 그래픽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제품디자이너라면 제품을 통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고요.
미하엘은 디자이너가 더 총체적으로 접근하기를 바랐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렌즈로 생태계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가능한 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갖추기를 원했습니다.
젊은 디자이너들을 그렇게 교육하기 위해 새로운 주제와 전문영역들을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그 구상을 했던 1991년에 이미 ‘생태학과 디자인’이라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마르크, 그때 태어나셨습니까?
1991년 말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이미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세상에, 그렇군요.
당시 생태학은 녹색당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애쓰던 아주 작은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미하엘은 이것이 무슨 생소한 좌파의 운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디자인에서 무엇을 하든 생태적 관점을 포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젠더와 디자인’이라는 주제도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1991년에 젠더와 디자인이라니요.
사람들은 그냥 웃으면서 “젠더와 디자인이 대체 뭡니까?”라고 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통합적 디자인 교육 안에 서비스디자인을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넣은 사람이 바로 미하엘 에를호프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의 교수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이라는 분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미하엘과 제가 만났습니다, 마르크.
그는 제가 심리학, 조직, 서비스 지향성, 솔루션 개발 등이 맞닿는 경계에서 하는 일에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교수가 되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의 세계와 디자인의 세계를 함께 연결한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고, 지원 절차를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그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그래도 보시다시피 저는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1월, 쾰른에서 서비스디자인 종신교수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정말 멋집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해주신 데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에게 서비스디자인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도 차차 나누겠습니다.
우선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지점에서 시작해 오늘 에피소드에서는 서비스디자인의 40년, 40년이 넘는 역사를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아주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 팬데믹 때 겪었던 어려움과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일까지 모두 지켜보셨으니까요.
서비스디자인의 발전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미리 나눈 이야기를 조금 설명하자면, 비르기트가 오랫동안 모아 온 작업물과 자료를 몇 가지 보여주시고,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려고 합니다.
1995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1995년의 서비스디자인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비르기트 마거:
서비스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서비스마케팅 분야의 린 쇼스택(Lynn Shostack)이 한 차례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가 생각한 서비스디자인은 조형이나 물리적 공간에 상당히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서비스마케팅 분야의 린 쇼스택과 메리 조 비트너(Mary Jo Bitner)가 서비스디자인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비스마케팅 학회에서 두 사람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그들이 서비스 품질과 서비스 혁신의 영역에서 디자인과 서비스디자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지 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이 기반을 닦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초기에는 마케팅 전문가들이 서비스 영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이 서비스 혁신과 서비스 품질 개선에 어떻게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당시 특히 독일에서는 ‘서비스 사막(service desert)’이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독일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기계를 위해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서비스의 세계에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압박이 아주 컸습니다.
어쨌든 서비스마케팅은 이미 존재했고, 경험디자인, UI디자인, 인터페이스디자인도 있었습니다.
대개 사람과 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에 집중하기는 했지만, 서비스디자인과 매우 가까운 분야였습니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인터페이스에서 상호작용과 경험을 디자인했지만, 그들 역시 프로세스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픽이나 제품, 패션을 디자인할 때는 정적인 결과물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시간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움직임을 디자인해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도들이 이미 있었다는 점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의미의 서비스디자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디자인이라는 렌즈로 서비스의 세계를 받아들일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자리의 기반을 마련하는 일도 제 사명이었습니다.
학생들을 교육해 놓고 정작 그들이 서비스디자이너로 일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서비스디자인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제 사명의 일부였습니다.
가르치는 일이자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꽤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미하엘 에를호프는 교수직에 지원할 기회를 열어주었을 뿐 아니라, 서비스디자인에 관한 첫 책을 쓰도록 저를 밀어붙였습니다.
1996년에 그가 “비르기트,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미하엘, 저는 너무 어리고 출판 경험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게 될 겁니다. 나와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와 함께 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그렇군요.

비르기트 마거:
네, 에치오 만치니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당시 밀라노공과대학교(Politecnico di Milano)에 있었고, 그곳에서는 이미 제품·서비스 시스템(product-service system)이라는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에치오는 사회혁신 영역에서도 늘 훌륭한 일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사에는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서비스디자인이라는 말도 그에게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책을 쓰게, 혹은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서비스디자인에 관한 첫 번째 책입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여전히 놀랍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이 정말 많이 들어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독일어로만 나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우리는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1997년에 홍콩에서 가르쳤고, 1998년에는 애스펀의 디자인 서밋에 참가했습니다.
활동은 국제적이었지만, 수업과 교육은 여전히 독일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일어난 일은, 보시면 웃음이 나실 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유명한 독일의…….

비르기트 마거:
바로 이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경제 잡지이지요?

비르기트 마거:
마케팅·경제 잡지입니다.
1998년 5월에 서비스디자인을 표지 주제로 다뤘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입니다.
참고로 저는 8월 1일에 퇴직했기 때문에 최근 몇 주 동안 대학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작업물과 자료를 다시 발견하고, 그중 서비스디자인의 발전에서 이정표라고 느껴지는 것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게는 이 짧은 기사, 이 표지 기사가 하나의 이정표였습니다.
독일의 혁신 분야에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마르크는 오스트리아에 계시니까 아시겠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타고난 혁신가들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다만 저는 독일인이라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2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을 뿐입니다.

비르기트 마거:
그래도 오스트리아 사람들과 그들이 얼마나 혁신적인지는 잘 아시겠지요.
이건 농담입니다.
마티아스 호르크스(Matthias Horx)를 아실 것입니다.
그는 미래연구소(Zukunftsinstitut)를 통해 1990년대 초부터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열심히 알리고 가르쳤습니다.
매년 미래 콘퍼런스를 열었고, 저를 기조연설자로 초대했습니다.
저는 당시 서른일곱 살쯤이었습니다.
그의 미래 서밋에 두 번, 어쩌면 세 번 기조연설자로 초대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독일 대기업의 혁신가들을 모두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업 자체는 혁신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도이체텔레콤, 도이체방크, 지멘스 등,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온갖 기업의 사람들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에서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행사에 오는 사람들은 늘 ‘괴짜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괴짜들은 제가 하는 이야기에 정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서비스에 디자인을 접목한다는 생각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그 증거가 되는 작업물 하나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크기가 좀 큽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비르기트 마거:
게임입니다.
아마 1999년이었을 텐데, 지멘스를 위해 디자인한 게임입니다.
당시 지멘스에는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가 있었습니다.
지멘스가 제공하려던 모든 서비스를 모아 놓은 부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서비스를 판매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입니다.
제품은 쉽게 팔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물질적인 형태도 없는 서비스에 왜 사람들이 돈을 내야 할까요?
그래서 서비스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무언가를 개발할 수 있겠느냐고 제게 요청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네, 물론 할 수 있습니다. 6주가 필요하고, 그중 한 주는 오스트리아의 스키 산장에서 보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물론이지요.

비르기트 마거:
왜 스키 산장에 가야 하는지 제가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주 설득력 있게 말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일곱 명이나 여덟 명 정도가 함께 오스트리아 산속의 아름다운 작은 스키 산장에 가 있었으니까요.
그중에는 지금 괴테 인스티투트(Goethe-Institut)의 수장인 게셰 요스트(Gesche Joost)도 있었고, IXDS의 공동창립자인 낸시 비르크횔처(Nancy Birkhölzer)도 있었습니다.
낸시는 PwC에서도 일했습니다.
정말 [불명확], ‘펜타곤(Pentagon)’ [앞뒤 연결 불명확], 아주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학생 프로젝트로 그 스키 산장에 있었는데, 낮에는 당연히 스키를 타야 했습니다.
숙소에 돌아오면, 참 고역이었습니다.
술을 한잔해야 했으니까요.
스키를 탄 뒤에는 한잔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그러고 나면 쉬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저녁 어느 시점이 되면 함께 앉아서 일을 했습니다.
그 한 주 동안 이 게임의 기본 구성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실제로 제작되었고, 사람들이 서비스를 가지고 놀아볼 수 있도록 모든 주요 고객사에 제공되었습니다.
게임에는 해커, 컨설팅, 통합 같은 온갖 요소가 등장합니다.
게임 속에서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고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여러 서비스가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저도 그 게임을 해보고 싶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정말 훌륭합니다.
이것은 게임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는 안내문입니다.
정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산업계가 갑자기 서비스디자인의 유용성을 발견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사용자경험을 개선하는 데뿐 아니라, 서비스란 무엇인지, 서비스의 가치는 무엇인지, 서비스에 어떻게 가격을 매길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도 매우 유용했던 것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와, 1999년이군요.

비르기트 마거:
네, 정말 큰 일이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저는 많은 대기업과 교류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놀라운 경험 중 하나가 루프트한자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꽤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2001년 루프트한자는 장거리 여행의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에서 승객 경험을 개선할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오.

비르기트 마거:
문제없습니다, 물론이지요.
그래서 프로젝트팀을 구성했습니다.
당연히 문헌조사를 했지만, 당연히 이코노미,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도 해야 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승객, 객실승무원, 사무장, 지상직 직원과 많은 인터뷰를 했고, 여러 분야가 함께 참여하는 워크숍도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연극 연출가도 참여시켰습니다.
비행기에서는 좌석에 묶여 있는 채로 앞의 화면이나 창밖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 경험에 공연예술이 무엇을 더할 수 있을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 경험을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처음으로 아주 훌륭한 그래픽디자이너, [이름 불명확]도 프로젝트에 참여시켰습니다.
우리는 함께 조사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 경험의 시나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스토리보드로 옮겼습니다.
연극에서 가져온 스토리보드의 관점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무대는 무엇인가요?
어떤 역할들이 있나요?
배우들은 어떻게 행동하나요?
어떤 소품을 사용하나요?
의상은 어떤가요?
다음 장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이런 자료를 아주 많이 만들었고, 정말 아름다운 시각화 자료도 제작했습니다.
이것은 작은 판본이지만, 보시다시피 모든 장면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2001년 9월 10일, 프랑크푸르트의 루프트한자 터미널에서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이것은 보안 구역에 들어갈 때 받았던 당시의 출입증 원본입니다.
그다음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9·11 테러입니다.
불이 꺼졌습니다.
서비스디자인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발표가 아주 잘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 추진하자는 열의와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9·11 이후에는 당연히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서비스디자인은 루프트한자 안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고, 지금 자세히 하지는 않겠습니다.
2013년에 그들이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내부에 서비스디자인 접근법을 도입했고, 이제 다시 대규모 서비스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예산이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제가 수주하지 못했고, 경쟁 제안에서 IDEO가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마르크 스틱도른:
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책에 나와 있습니다.
『디스 이즈 서비스디자인 두잉』에 실제로 그 프로젝트의 사례가 실려 있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좋습니다.
그 시기를 저는 지금 ‘확산기’라고 부릅니다.
처음 5년은 ‘기틀 형성기’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때는 저 혼자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의와 교육과정을 만들고, 다양한 방법을 시험해 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확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마르크 스틱도른:
전문기업들이 등장했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네, 2004년에 처음으로, 아니, 2003년에 런던에서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라이브워크(Livework), 엔진(Engine) 같은 곳의 사람들이 참여했고, 스피릿 오브 크리에이션(Spirit of Creation)도 당시 매우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에는 전 세계 약 3만 명의 팔로워와 약 1,500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네, 지난 22년 동안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그렇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2008년에 만났습니다.
제게는 첫 번째 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콘퍼런스였습니다.
이전에도 행사가 있었던 것은 알지만, 그것이 첫 대규모 콘퍼런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제로 세계의 공동체를 한자리에 모은 첫 행사였습니다.
제게는 첫 가족 모임 같았습니다.
이름을 들어보거나 글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는 만나지 못했던 유명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네, 정말 좋았습니다.
실제로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의 첫 글로벌 콘퍼런스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카네기멜런대학교에서 두 번의 콘퍼런스가 있었습니다.
셸리 이븐슨(Shelley Evenson)과 제이민 헤그먼(Jamin Hegeman)이 주최한 ‘이머전스(Emergence)’ 콘퍼런스입니다.
셸리는 서비스디자인네트워크 핵심팀의 일원이었습니다.
초기 몇 년 동안은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학술적 성격이 더 강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2008년에 셸리와 저는 이것을 세상에 개방하고, 정말 하나의 운동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콘퍼런스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만난 2008년 암스테르담 행사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는 10월에는 세계디자인수도(World Design Capital)와 협력해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에서 제19회 글로벌 콘퍼런스를 개최합니다.
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콘퍼런스가 19년째라니, 놀랍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전 세계에서 열렸습니다.
제게는 매년 열리는 가족 모임 같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다행히도…….

마르크 스틱도른:
우리 모두가 만나는 자리입니다.

비르기트 마거:
네, 다행히 매년 아주 많은 새로운 분들도 함께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분들도 일종의 가족 모임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새로 왔다고 배제되는 모임이 아닙니다.
오자마자 자연스럽게 가족의 일부가 되는 모임입니다.
이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포용적이고, 친절한 공동체는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며칠 동안의 분위기는 언제나 제가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저는 지금까지 22년 동안 자원봉사자로 이 일을 해왔습니다.
보통 자원봉사에 기대하는 수준보다는 일이 조금 더 많다는 점은 믿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콘퍼런스가 열리는 며칠 동안 정말 많은 에너지를 되돌려 받고, 놀라운 분위기를 느낍니다.
사람들이 정말 훌륭합니다.
지난 19년 동안 모두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함께 배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모임을 이어온 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기대하고 있습니다.
10월 말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행사 말입니다.

비르기트 마거:
나중에 방송 설명란에 링크를 넣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19년을 돌아보면, 제게 2008년은 어린아이가 장난감 상자를 여는 것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던 일들에 갑자기 이름이 생겼습니다.
비르기트의 이야기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경험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전공이나 배경이 디자인이 아니어도 디자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디자인은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지요.
조사를 잘하는 사람, 프로토타이핑을 잘하는 사람, 퍼실리테이션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19년을 돌아보면, 어떤 주제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까?
시기를 몇 단계로 구분해 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콘퍼런스와 서비스디자인 공동체의 19년을 하나의 여정지도로 만든다면, 각 시기의 주요 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비르기트 마거:
좋은 질문입니다.
아직 그 지도를 그려보지는 않았지만, 이 질문을 계기로 그려볼 수도 있겠습니다.
초기에는 서비스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만드는 일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미 10년 넘게 서비스디자인을 해왔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에게는 여전히 매우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하는 일을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년은 기반을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그때 『터치포인트』 발행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연구실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바로 그 창간호입니다.
첫 콘퍼런스가 열린 지 반년 뒤인 2009년 4월에 발행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가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라브란스 뢰블리(Lavrans Løvlie)의 ‘서비스디자인: 제품에서 사람으로’.
마르셀 즈비르스(Marcel Zwiers)의 ‘네덜란드 디자인: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때’ 같은 글이 있습니다.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이 이 창간호에 참여했습니다.
참고로 이 첫 번째 『터치포인트』의 PDF는 SDN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것이 첫 번째 단계였습니다.
기반을 다지고 공통의 이해를 만드는 단계였습니다.
그다음에는 비즈니스에 훨씬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서비스디자인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서비스디자인의 가치는 무엇인가?
서비스디자인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더 넓게는 사용자경험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여정지도라는 주제가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마르크, 그 중심에 당신이 있었습니다.
개별 여정지도나 퍼소나 등을 각각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우리가 하는 일이 비즈니스 안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개인적으로 실행이라는 요소를 아주 강하게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디자이너들은 대체로 자신을 좋은 아이디어, 때로는 콘셉트를 내놓는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통 실행까지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그렇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저는 서비스디자인에서 처음부터 실행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프로젝트는 서랍 속에 들어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비르기트 마거:
동의합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비즈니스의 관점과 함께, 서비스를 바꾸려면 바뀌어야 하는 구조와 조직의 복잡성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측정할지, 실행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실행을 측정하도록 어떻게 보장할지도 고민했습니다.
11~12년 전, 제가 서비스디자인 어워드(Service Design Award)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서비스디자인 어워드를 시작한 이유는 실제로 실행되었고 그 영향이 측정된 프로젝트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SDN 웹사이트에 가면 사례 자료실을 볼 수 있습니다.
회원이라면 모든 어워드 사례와 그 밖의 아주 많은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사례들에는 서비스디자인의 가치와 영향을 보여주는 근거가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비르기트 마거:
미리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답하자면, 그다음에는 서비스의 디지털 요소를 더 많이 살펴보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기억하기조차 어렵지만, 제가 서비스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는 아날로그였습니다.
인터넷도, 아이폰도 없었습니다.
없었습니다.
서비스는 실제로 고객의 눈앞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고객이 참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서비스는 저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거 서비스마케팅에서 사용하던 이런 정의들이 디자이너인 우리에게도 중요했습니다.
고객의 눈앞에서 고객과 함께 만들어지고, 함께 만들어지는 그 시간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마르크 스틱도른:
그렇습니다.
그런데 물론…….

비르기트 마거:
그것이 바뀌었습니다.
바뀌었고, 큰 변화였습니다.
디지털 서비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서로 다른 접근 지점과 서로 다른 서비스 수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사람들이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다시 디지털로, 또 아날로그로 오갈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
정말 흥미로운 디자인 과제였습니다.
디지털화는 매우, 매우 중요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네.

비르기트 마거:
그리고 물론 지난 2년 동안은 AI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 AI는 서비스 제공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이며, 그것은 서비스디자인에 어떤 의미인가?
앞으로는 AI가 서비스를 디자인하게 될 것인가?
서비스디자이너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이것들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핵심 질문들입니다.
지난 2년 동안 『터치포인트』는 인공지능과 서비스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호를 세 차례 발행했습니다.
지금 가장 지배적인 주제 중 하나인 것입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물론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입니다.
모든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우리는 AI를 활용해 디자인하고, AI를 위한 디자인도 합니다.
가장 큰 질문 중 하나는 언제 AI를 도입할 것인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AI에 맡길 것인가?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험에 더 집중할 것인가?
그것은 사람이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르기트 마거:
맞습니다.
네, AI는 우리의 일을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도구들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AI가 평균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새로운 것을 찾고, 주변부로 밀려난 주제들을 포함해 훌륭한 혁신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적어도 현재로서는 AI에 그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어쩌면 기대해서는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한 가지 능력이 있다면, 바라건대 그것은 공감하는 능력일 것입니다.
공감을 형성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능력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실제로 살아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공감하고,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마르크.
심리학자인 제 친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열쇠 구멍은 그것이 열쇠인지, 아니면 디트리히(Dietrich)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마르크 스틱도른:
가짜 열쇠 같은 것이지요.

비르기트 마거:
열쇠 구멍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열리니까요.
AI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질 정도로 공감하는 척할 수 있습니다.
진짜처럼 느껴지기만 한다면,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누가 신경 쓰겠습니까?
지금 도이칠란트푼크(Deutschlandfunk)에 오픈AI의 발전을 다루는 좋은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몇 년 전에 나온 영화 〈그녀(Her)〉를 꽤 자주 언급합니다.
주인공이 AI 인격체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입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정말…….

비르기트 마거:
네, 배우자가 가끔 “왜 나보다 챗GPT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요?”라고 묻지는 않습니까?

마르크 스틱도른:
다행히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모르지요.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비르기트,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이제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어 가니까요.
처음 출발점을 돌아보면 심리학과 조직개발이 배경이었습니다.
그 40년을 살펴보는 동안에도 중간중간 등장했던 주제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늘날에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조직은 이 새로운 현실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까요?
이 연결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지난 40년 동안 계속 간직해 온 것, 꼭 말씀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비르기트 마거:
지난 수십 년 동안 조직개발, 행동변화, 심리학적 관점은 늘 저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예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제 생각에 조직 안에서 변화를 어떻게 촉발할지, 인간의 행동을 어떤 관점으로 살펴볼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서비스디자인을 할 수 없습니다.
그 행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행동일 수도 있고, 최종 사용자의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향을 주고자 하는 대상으로서 그 행동을 서비스디자인 안에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행동을 디자인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행동의 건축가(behaviour architects)’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학생들에게 보기 좋은 여정지도나 아름다운 퍼소나, 멋지게 시각화한 이해관계자 지도를 만드는 것만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내려놓아도 됩니다.
조직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변화의 에너지를 어떻게 여러 분야가 함께하는 방식으로 조율하고, 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난 40년 동안 제가 계속 간직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중요합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훌륭합니다.
비르기트,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르기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시다면, 곧 열리는 서비스디자인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저희 모두를 만나보십시오.
공동체를 만나고, 그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그곳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비르기트, 저희는 분명 다시 만나겠지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르기트 마거: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르크.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10월에 프랑크푸르트 라인마인 지역에서 뵙기를 바랍니다.

마르크 스틱도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르기트.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번역상 확인 사항
첨부된 영상 소개글과 대담 전사문 전체를 번역했습니다.
자동 전사에서 생긴 말더듬과 의미 없는 반복은 자연스럽게 정리했으며, 원문에 명시된 불명확한 대목은 추정해서 채우지 않았습니다.
원문에서 별도 발언자가 표시되지 않은 짧은 맞장구는 화자를 확정하기 어려우며, 마지막 인사도 첨부 전사문의 화자 표기를 따랐습니다.
영상 소개글에는 행사명이 ‘Service Design Global Conference 2025’로, 일정은 ‘2026년 10월 28~30일’로 함께 적혀 있습니다.
번역에서는 이 불일치를 임의로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제목과 도입부에서는 ‘30년’이라고 하지만, 대담 중에는 ‘40년’, ‘40년 이상’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이 역시 원문대로 옮겼습니다.
미하엘 에를호프가 ‘2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발언은 영상의 공개일과 맞지 않습니다.
TH Köln의 공식 부고에 따르면 사망일은 2021년 5월 1일이며, 본문은 원문 발언을 유지했습니다.
출처: https://www.th-koeln.de/hochschule/nachruf-michael-erlhoff_84489.php
‘처음 시작할 당시 인터넷이 없었다’, ‘AI는 평균적인 정보 이상을 제공할 수 없다’ 등은 발표자의 표현과 판단을 옮긴 것이며, 번역자가 사실로 확인하거나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독일어 ‘Dietrich’는 자물쇠를 여는 도구, 즉 락픽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영어 표현을 찾는 대화와 진행자의 ‘가짜 열쇠’라는 응답을 원문대로 살렸습니다.
소개글에서 말줄임표로 잘린 링크는 원문 표기를 유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