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디자인 | 미래 | 정책 | 정치 - 루시 킴벨 교수와 캐머런 톤킨와이즈 교수의 대담

2026. 10. 2. 02:03ㆍ서비스디자인/서비스디자인 소식

디자이너는 미래를 디자인합니다.
미래학자는 디자인을 디자인합니다.
디자이너는 정책디자이너를 돕습니다.
정책입안자는 미래를 디자인합니다.
교육자는 학생들을 통해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미래를 창의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이 정책입안자들이 정책을 디자인하거나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나아가 정책입안자들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미래를 디자인하는 일이 디자인 교육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유튜브 영상 소개문

디자인 | 미래 | 정책 | 정치
루시 킴벨 교수와 캐머런 톤킨와이즈 교수의 대담

원제: Prof. Lucy Kimbell in conversation with Prof. Cameron Tonkinwise on Design | Futures | Policy | Politics
주최: 시드니공과대학교 디자인스쿨(UTS School of Design)
행사일: 2026.8.31. 
유튜브 게시일 : 2026.9.8.
원본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6Z1G9heWILo   
전체 번역 : 챗GPT로 번역했습니다. 생략, 오역이 있을 수 있으니 원본 영상을 봐주세요.



루시 킴벨(Lucy Kimbell) 교수

루시 킴벨 교수는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s London)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의 현대 디자인 실천(Contemporary Design Practices) 교수이며, 정책퓨처스스튜디오(Policy Futures Studio)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서비스디자인, 소셜디자인, 정책을 위한 디자인을 탐구합니다.
EU 마리 퀴리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국제 박사과정 네트워크인 '민주적 디자인을 통한 지속가능한 전환(Sustainable Transitions through Democratic Design)'의 공동 책임자이며, 영국 예술인문연구위원회(AHRC)가 지원한 디자인 및 공공정책 연구 네트워크(Design and Public Policy Research Network)를 이끌었습니다.
대학원 교육의 혁신가로서 옥스퍼드대학교 사이드경영대학원(Saïd Business School)의 MBA 과정에서 15년 동안 디자인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디자인씽킹과 서비스디자인에 관한 경영진 교육을 진행했으며,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MBA 과정 개설에도 참여했습니다.
현재 영국의 2029년 연구우수성평가(REF 2029)에서 '미술 및 디자인: 역사, 실천 및 이론'을 담당하는 제32분과 평가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Cameron Tonkinwise) 교수

캐머런 톤킨와이즈 교수는 시드니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디자인스쿨의 디자인학(Design Studies) 교수이며, 디자인학과 전환디자인(Transition Design) 분야의 국제적인 전문가입니다.
그는 더욱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의 힘에 관해 폭넓게 저술하고 강연해 왔습니다. 그의 전문성은 디자이너 교육에 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스쿨(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 카네기멜런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 시드니공과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학 프로그램을 개설했으며, 이를 통해 국제적인 디자인 교육과정의 변화에 기여했습니다.
디자인씽킹, 디자인 윤리, 디자인 연구, 사변적 디자인(Speculative Design)에 관한 여러 영향력 있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전문 번역

브래드 헤일록(Brad Haylock, 시드니공과대학교 디자인스쿨 학장):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브래드 헤일록입니다.
시드니공과대학교 디자인스쿨 학장을 맡고 있으며, 오늘 저녁 행사의 시작을 알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먼저 우리가 오늘 모인 이곳이 주권을 양도한 적 없는 가디갈(Gadigal) 원주민의 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시작하고자 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원로들, 그리고 앞으로 원로가 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실 수도 있는 원주민 공동체의 전통적 수호자들과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 동료들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우리 대학이 활동하는 모든 땅과 바다의 전통적 수호자들과 그 조상들에게도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디자인스쿨 연구 부학장인 조이 사도키에르스키에게 진행을 넘기겠습니다.
오늘 발표자들을 소개하고 행사에 관한 추가 안내를 해주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이 사도키에르스키(Zoë Sadokierski):
오늘의 발표자 두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계신 루시 킴벨 교수입니다.
루시는 런던예술대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교수이며, 이곳에서 정책퓨처스스튜디오(Policy Futures Studio)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서비스디자인, 소셜디자인, 정책을 위한 디자인을 탐구합니다.
또한 국제 박사과정 연구 네트워크인 '민주적 디자인을 통한 지속가능한 전환(CoDesign4Transitions)'의 공동 책임자이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루시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소개 자료에 모두 나와 있으므로 여기서 너무 오랫동안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루시는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루시,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곳 시드니에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분이 참석해 계십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캐머런 톤킨와이즈 교수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시드니공과대학교에서 디자인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캐머런은 디자인학과 전환디자인 분야의 국제적인 전문가입니다.
더욱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시스템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디자인의 힘에 관해 폭넓게 저술하고 강연해 왔습니다.
나머지 소개는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대담이 끝나면 여러분의 질문을 받을 예정입니다.
이동식 마이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만, 모든 발언이 녹화된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Cameron Tonkinwise):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영국의 공휴일인데도 여행을 앞두고 이 대담에 참여해 주신 루시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오늘 행사는 앞으로 이어질 연속 대담의 시작입니다.
루시가 첫 번째 초대 손님입니다.
저희는 앞으로 초대하는 모든 분에게 자신의 활동 분야에 관한 미래를 질문하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루시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질문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디자인 교육의 미래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특히 현재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영국의 고등교육 상황과 연결해서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영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참여하신 저탄소 실천가 루시라는 점도 인정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디자인 교육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루시?

루시 킴벨(Lucy Kimbell):
조이와 캐머런,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영국에서 원격으로 참여하면서 이곳의 전통적 토지 수호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디자인 교육의 미래에 관한 질문이군요.
먼저 우리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상황에 도달했는지부터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디자인이 아직도 학문적 경계가 상당히 불분명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공학대학이나 컴퓨터과학에서 발전한 전통도 가지고 있지만, 제가 일하는 예술대학과 같은 전통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문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실천이 어떻게 한 대학 안에서 하나의 분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100년 전에는 더욱 그렇지 않았겠지요.
여기에는 일련의 실천을 공식화하고 학문적 체계 안에 편입하면서 그 정당성을 확보해 온 과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정당성이 필요했을까요?
자원에 접근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디자인 학위를 다른 분야의 학위와 동등하게 인정받도록 함으로써 학생들이 학자금 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수들이 다른 학문 분야의 교수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제 느낌으로는 우리가 다른 대학의 다른 분야 교수들보다 상당히 적은 급여를 받는 것 같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정당성을 확보하면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한 요구도 생깁니다.
디자인은 근대성, 산업화, 소비 등과 연결된 매우 복잡한 역사를 지닌, 학문적 경계가 불분명한 실천들의 집합입니다.
그런데 정당성을 얻고 나면 이 실천들의 집합을 연구라는 관점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디자인 분야의 박사학위도 있어야 하고,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 특히 더 높은 등록금을 내는 국제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건물과 시설 투자도 필요해집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일이 뒤따릅니다.
우리는 지금 영어권이 지배하는 세계화된 디자인 고등교육 체계 안에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체계 안에 고용되어 있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을 제도화하고 정당화해 온 이러한 조건들이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캐머런의 질문은 미래의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이 어떤 모습일 것인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지정학적 변화, 학문의 자유에 관한 불확실성,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의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 등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리학 같은 과학 분야에도 해당합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영국에서는 물리학 연구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입자충돌기 같은 시설 말입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시설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조차 잘 모릅니다.
그렇다면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를 위해 입자충돌기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정당한 일일까요?
이런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고등교육기관에 예산을 투입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훨씬 광범위한 우려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 안에서 디자인이 차지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여기에 이민과 관련된 정치적 불확실성도 있습니다.
영국에는 제가 보기에 좀 이상한 제도가 있습니다.
영국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이민 통계에서 이민자로 집계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민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는 우익 포퓰리즘 담론에 이러한 수치가 활용됩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영국에 와서 공부하고 등록금을 내고, 이곳에 남아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하고 있거나 앞으로 변화할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아마 지난해였던 것 같은데, 유럽 밖에서 영국으로 유학 오는 학생들에 대한 제한하는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특정 국가에서 오는 유학생들은 가족을 동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국가들이 해당하는지는 여러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미 많은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모델과 플랫폼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자동화 및 인공지능과 연결되어 있으며, 거대 기술기업들이 지식재산과 전문지식을 수집하는 행위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기술이 많은 것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특정한 방식으로 코드화되면서 어떤 것은 특별한 지위를 얻고 다른 것은 배제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생태계 붕괴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상 패턴이 앞으로 5년, 10년, 20년, 30년 계속된다면 고등교육이라는 제도 자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학자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한가 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해 이 문제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도 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 교수의 사례를 목격했습니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최연소 흑인 교수로 주목받았던 분인데, 안타깝게도 약 3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달에 걸쳐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흑인으로서 고등교육기관의 지도자나 고위직에 있는 것은 안전한 일일까요?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에게는 안전한 환경일까요?
제이슨 아데이 교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의 사망 며칠 후 열린 추모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가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고, 집회는 그다음 월요일에 열렸습니다.
경의를 표하고 수천 명의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런던 중심부 트라팔가 광장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흑인 지도자들이 차례로 나와 그를 추모하며 발언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많은 분이 바로 지난주에도 제이슨과 함께 있었으며 그를 도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대학들이 처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질문은 디자인 고등교육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디자인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을 제도화하고 학문적 체계에 편입해야 했다는 점에서, 대학을 둘러싼 전체적인 상황은 디자인 교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적어도 영국에서는 지금과 같은 체계가 10년 후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형태의 교육이 계속 등장할 것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체계 자체가 재편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속한 대학과 여러분이 속한 대학 모두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감사합니다, 루시.
현재 아데이 교수를 둘러싼 상황에 주목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언급해 주신 것을 의미 있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처한 맥락의 일부이고, 저희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처음 논의했던 이후 아주 최근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추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과 연결되는 질문입니다.
디자인은 대학에 비교적 늦게 진입한 분야이지만, 다양한 인식론이 자리 잡을 공간을 만들어 왔습니다.
창의적 실천에 기반한 연구를 위한 공간도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디자인은 오히려 지금과 같은 변화에 대처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디자인 교육계의 동료들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용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늘 의문입니다.
루시가 보기에 흥미로운 변화의 징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후변화나 인종차별, 또는 자원의 문제에 대응하면서 시대적 요구에 적절하게 반응하고 있는 디자인 교육의 흥미로운 사례가 떠오르시나요?
디자인은 이런 문제에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적합한 분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디자인 분야에서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루시 킴벨:
동의합니다.
저 역시 그런 사례를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속한 기관을 지나치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별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밖에서 비판하기보다는 기관 내부에서 우려를 제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속한 대학이나 여러분의 UTS처럼 규모가 큰 대학들은 실제로 실험하고 변화를 추진하기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동료들에게서 보는 것은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저는 현재 주로 박사과정 교육에 집중하고 있고 일반적인 수업에는 일부만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저보다 교육에 더 많이 관여하는 동료들의 활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은 학생들과 함께 정말 다양하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단체, 전문가 집단, 특정 장소와 현장 등 구체적인 맥락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상당히 불안정해 보입니다.
특히 이런 협업을 진행하는 동료들과 학생들이 투입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활동은 프로젝트나 교육과정에 더 직접적으로 통합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MBA 과정을 개설했을 때의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교육방식 중 일부에는 플립러닝(flipped classroom) 개념이 반영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협력기관과 진행하는 실제 프로젝트를 통해 MBA의 모듈이나 교육 단위를 학습하도록 한 것입니다.
대학 내 여러 교육과정에서 이와 같은 모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적절한 협력기관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따라 성패가 달라집니다.
대학이 협력기관을 구해주지 않는다면 학생이나 교수가 직접 협력기관을 찾고 협상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상대방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어떤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건은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여러 요인과 제도적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 동료인 애덤 소프(Adam Thorpe) 교수와 로레인 개먼(Lorraine Gamman) 교수가 운영하는 범죄예방디자인연구센터(Design Against Crime Research Centre)의 사례가 있습니다.
물론 이 센터가 수행하는 모든 활동을 설명하는 데 '범죄'라는 단어가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가 위치한 런던의 해당 자치구와 오랫동안 협력해 왔습니다.
자치구 내의 사업장 임차인, 주민, 지역사회 조직들과 함께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활동은 지역에 기반을 둔 실험의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 구조들이 실제로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이 필요하며, 그중 상당 부분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자원도 부족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렇습니다.
하지만 처음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대학에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특권 덕분에 그런 노동을 투입해서라도 기회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일을 시도할 여력이 조금은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를 간단히 짚어보고 싶습니다.
원래는 루시가 참여하고 있는 전환 관련 박사과정 연구비 지원사업, 그러니까 코디자인 포 트랜지션스(CoDesign4Transitions)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루시 킴벨:
코디자인 포 트랜지션스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을 하나의 모범사례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영국이 다시 EU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기와 맞물려 진행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보면서 예전에 EU가 에라스무스(Erasmus)와 아틀란티스(Atlantis)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가능하게 했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량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말 놀라운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서로 다른 국가에 있는 13개 기관이 참여하면서 이 분야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이민 정서가 강해지는 시대에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브렉시트 이후에는 어떤 상황입니까?
박사과정 교육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으로서 이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루시 킴벨:
이 사업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배경을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EU의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프로그램(Marie Skłodowska-Curie Actions)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와 같은 박사과정 연구 네트워크뿐 아니라 박사후연구원과 연구인력 교류도 지원합니다.
EU 차원에서 재원을 조성해 이러한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제도입니다.
우리는 2022년에 지원했고, 놀랍게도 연구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첫 번째 지원에서 탈락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한 번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참여자 중에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네트워크가 이전에 하나의 팀으로 협력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협력이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는 연구비를 전액 지원받는 박사과정 연구자 13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그들의 업무이며, 비교적 넉넉한 급여도 받습니다.
7개국 8개 대학에 이 13명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지방정부를 비롯한 여러 협력기관이 있습니다.
대규모 컨설팅회사도 있고, 소규모 기업도 있으며, 그 밖에도 여러 협력기관이 있습니다.
명단이 워낙 길어서 모두 기억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연구비는 아직 존재하며 지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경쟁은 매우 치열합니다.
그만큼 특별한 교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지원제도의 목적입니다.
유럽의 다른 연구지원 프로그램에는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연구를 위해 수십억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럽의 중심에는 여전히 이러한 연구를 추진하려는 의지가 존재합니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가시성과 인식도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2021년 무렵 도입된 '신유럽 바우하우스(New European Bauhaus)'라는 담론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바우하우스의 유산이나 근대성과 관련해 이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그러한 비판은 충분히 타당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사용하는 정책 언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 결과 상당한 규모의 지원예산이 생겨났습니다.
5억 유로(약 7,644억 원) 규모의 대규모 기금이었습니다.
* 참고로 EU 공식 자료에 따르면, 신유럽 바우하우스(New European Bauhaus) 사업에 2025년 5월까지 5억 유로 이상이 투자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누적 투자금액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금은 대학뿐 아니라 도시와 컨소시엄도 해당 정책의 틀 안에서 사업을 제안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합니다.
현재 EU 내부에서는 다음 지원 주기에 어느 정도의 예산을 배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원 규모가 상당히 증가할 것인지가 쟁점입니다.
따라서 EU의 연구지원 기반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호기심에 기반한 연구도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밀라노공과대학교의 프란체스카 리초(Francesca Rizzo) 교수가 브뤼셀에서 한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언제였더라, 아마 5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EU 집행위원과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EU 집행위원을 초청한 행사였는데, 프란체스카가 약 30명의 디자인 분야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으로 초대받아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는 집행위원과 직접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고, 디자인 연구와 관련해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분들은 정치인입니다.
다음 연구비 지원 주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누가 알겠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럽에는 국방비 지출과 관련한 압박이 있습니다.
친환경 또는 기후 관련 투자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로 방향을 바꿔야 하는지를 둘러싼 압박도 있습니다.
두 가지를 실제로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녹색성장과 탈성장에 관한 논쟁처럼 말입니다.
이런 논쟁은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다년도 지원계획이 발표될 때 어떤 연구와 투자에 어느 정도의 예산이 배정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국의 경우에는 이제 EU와 합의가 이루어져 이러한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매우 치열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컨소시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기반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런 일을 하려면 대학 내에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학술 연구인력뿐 아니라 행정 및 전문지원 인력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관련 제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컨소시엄을 조직하고, 연구비 신청서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는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5년이나 10년 뒤에는 디자인 분야에서 이러한 기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원예산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다양한 연구지원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연구위원회의 지원사업에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분야 연구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관은 예술인문연구위원회(Arts and Humanities Research Council, AHRC)입니다.
그런데 이 기관은 영국의 국가 연구지원기관 가운데 예산 규모가 가장 작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실천에 기반한 디자인 연구 분야에는 상당한 투자가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연구지원 환경입니다.
연구자라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나이가 꽤 많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해왔지만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황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교육과 직접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 질문은 교육에 관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대학의 연구와 혁신을 뒷받침하는 기반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대학이라는 기관에서는 교육과 연구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교수학습 모델이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더 이상 막대한 등록금을 지불하지 않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되거나, 출신 국가의 상황에 따라 어차피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 이민과 비자 문제까지 더해집니다.
이 모든 조건이 결합하면 현재의 체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특정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이미 이런 방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으니, 여기서 오늘 대담의 배경을 조금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이 연속 대담에서 모든 초대 손님에게 던지는 질문이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교롭게도 루시가 현재 미래디자인과 정책의 미래, 그리고 미래 전반에 관한 책을 집필하기로 계약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미래에 관한 담론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루시는 관계적 예술 분야의 혁신가로 활동했고, 예술경영 분야에서도 일했습니다.
서비스디자인의 실천을 성숙시키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영국의 폴리시랩(Policy Lab)에서 정책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관련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컨소시엄을 통해 기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미래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루시 킴벨: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몇 가지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게 들으니 마치 일관된 경로를 걸어온 것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실제로 제가 경험한 과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캐머런이 질문을 보내주신 이메일에서 '방향 전환(pivot)'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지요.
그런데 어떤 변화는 방향 전환이라기보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트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대부분은 여러 우연한 조건에 크게 좌우되었습니다.
많은 결정이 제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당시 가능했던 선택지에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경제적 상황과도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활동을 위해 어떤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의 전기적 서사가 반드시 흥미로운 분석의 관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조건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특정한 시점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약간 학문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으로서 기회와 자원이 있는 방향을 따라갔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제가 어딘가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디자인에서는 오히려 제가 들어갈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이 개방적인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학문적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개방적이며, 이동성이 있고, 비결정성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이 그런 것이라면 나도 그 안에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옥스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디자인 연구원으로 일하기로 했을 때 제가 했던 생각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학자도 아니었고, 디자인에 관해서도 사실 잘 알지 못했습니다.
박사학위도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성장하고 성숙해 온 과정은 다른 사람들이 저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제 주변의 작은 생태계 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분야 역시 사회적으로 더 이해하기 쉬워지고,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앞서 학계의 여러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학계에는 호기심과 창의성, 비판적 사고와 맥락적 사고를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캐머런이 열거한 제가 해온 일들은 다소 우연적이고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캐머런 톤킨와이즈:
저에게는 바로 그런 점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말입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차원의 디자인 활동을 거쳐 변화해 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거기에는 하나의 서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서비스, 정책, 미래를 차례로 생각해 온 것처럼 보입니다.
저에게는 그 흐름이 상당히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번에 루시가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지금까지 해온 일의 연장선처럼 느껴졌습니다.
예전에 박물관을 통해 가이와 함께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지요.
저와 그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간단한 시나리오 개발에 관해 함께 생각해 봤던 일이 기억납니다.
제가 루시에게서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당히 성숙한 담론을 형성하신 것 같습니다.

루시 킴벨:
그렇습니다.
이 역시 부분적으로는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2005년에 다소 이례적인 경로로 옥스퍼드대학교에 취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래전 일이군요.
당시 제 자리는 5년 계약의 연구원직이었습니다.
그 시절 옥스퍼드대학교 안에서 새롭게 출범한 경영대학원은 상당히 독특한 기관이었습니다.
그곳의 특이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미래에 관한 전문성이었다는 것입니다.
라파엘 라미레스(Rafael Ramírez) 교수 등이 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옥스퍼드 경영대학원 안에서 이미 미래 연구와 관련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라파엘과 앤절라 윌킨슨(Angela Wilkinson) 박사는 오랫동안 미래 연구에 종사해 온 분들입니다.
그들은 자체적인 연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저와 대화를 나누면서 디자인 분야에서 온 제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보다 앞서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몇 년 동안 가르치면서 토니와 피오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목상으로는 미래를 다루는 그 실천 분야의 생태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라파엘과 동료들을 만나 대화하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시아 셀린(Cynthia Selin)을 비롯한 다른 연구자들도 만났습니다.
신시아는 오랫동안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활동한 연구자입니다.
그들과 접하면서 디자인 분야에서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그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후 라파엘과 신시아가 저에게 옥스퍼드 미래 포럼(Oxford Futures Forum)의 공동 운영을 제안했습니다.
캐머런도 그 행사에 참석하셨지요.
2014년에 디자인과의 만남을 명시적인 주제로 다룬 행사였고, 2017년에도 다시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미래에 관한 사고방식, 특히 시나리오 연구의 전통에 노출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미래예측과 관련된 국제학술행사인 앤티시페이션 콘퍼런스(Anticipation Conference)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행사에는 가지 못했고, 제가 처음 참석한 것은 2017년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을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시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 명을 초청해서 미래 연구 학술대회에서 코미디 공연을 진지한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하게 했습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
[코미디언 이름 불명확]인데, 제가 이름을 이렇게 잊어버리다니 정말 민망합니다.
아무튼 그 코미디언의 활동에서는 비결정적인 상황에 대처하고 반응하는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런 방식으로 미래 연구 생태계에 노출되었습니다.
그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해온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직 박사학위를 마치지 않았고, 박사과정을 밟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이론의 기초와 디자인의 역사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가이 줄리어(Guy Julier)가 말하는 디자인 문화연구(Design Culture Studies)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다른 자료도 엄청나게 읽어야 했습니다.
막 등장하고 있던 서비스디자인이라는 분야도 이해해야 했습니다.
디자인씽킹에 관해서도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래 연구까지 본격적으로 다룰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다른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대학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그곳에서 맡은 업무들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일을 해야 했습니다.
연구비를 신청해서 받으면 그 연구비로 약속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반드시 자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던 중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였고, 치매를 앓는 부모님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계 사람들은 대체로 디자인의 가치를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캐머런, 당신도 디자인을 열렬하게 옹호하는 사람이지요.
저는 이런 디자인에 대한 열렬한 옹호에 종종 양가적인 감정을 느껴왔습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그것이 제 일이기도 했습니다.
계속 직장을 유지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성을 확보한 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래 연구자들에게서 배운 것을 성찰적으로 활용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그 미래를 탐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관점을 적용해서 디자인이라는 것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글로벌 노스(Global North), 그중에서도 영어권 선진국의 디자인 실천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마 2022년쯤 책의 구상을 제대로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원고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두 번째 원고를 작업하는 단계이며, 책은 내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15년 전에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었지만 당시에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내용을 이제야 진지하게 살펴보는 셈입니다.
어쩌면 그 책들을 훨씬 일찍 읽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캐머런 톤킨와이즈: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이 정확하게 적절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연구에 아주 깊이 관여하고 계시니까요.
아직 집필 중인 책에 관해 질문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어본 일부 내용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루시의 접근은 제가 '2차 미래구상(second-order futuring)'이라고 부르는 것의 흥미로운 사례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주로 토니 프라이(Tony Fry)의 연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개념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미래의 미래(futures of futures)'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탈미래화(defuturing)라는 문제를 우려합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미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선택 가능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니가 디자인 픽션과 미래디자인에 관한 책인 『Design Futuring』을 썼을 때는 또 다른 문제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가 읽어본 루시의 원고에서 하려는 작업과 더 가까운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2차 미래구상입니다.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현재의 상황을 조금 바꾼 모습을 역으로 상상해야 합니다.
이를 백캐스팅(backcasting)이라고 합니다.
미래를 구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미래가 도래할 수 있는, 현재와 인접하지만 조금은 다른 현재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시도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미 그런 점을 언급하기도 하셨지요.
제가 특히 흥미롭게 생각했던 부분을 청중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루시는 미래디자인을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미래에도 존재할 것인지를 질문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탐구하면서 미래라는 개념 자체가 미래에도 존재할 것인지, 또는 그것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지 덜 중요해질지까지 질문합니다.
저는 미래구상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미래 연구를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그 담론의 바깥에 어느 정도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루시의 작업이 바로 그런 접근입니다.
물론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미래를 탐구하면서 탐구 대상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루시 킴벨:
원고에 관한 반응을 들으니 흥미롭습니다.
제가 세 개의 장을 보내드렸던 것 같지요?
그렇다면 먼저 미래학(Futures Studies)에 관해 조금 이야기하면서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2020년 무렵에야 미래학 관련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도 매우 흥미롭고 통찰력 있는 연구자들과 교류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 중 일부는 저도 모르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은 미래 연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는 고착(lock-i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것들과 현재의 기반시설이 특정한 미래를 고착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의 조건이 미래에 실현 가능한 선택지를 제한합니다.
토니 프라이가 이야기하는 내용도 사실 독창적인 발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이 닫히는 현상은 과학기술학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인 논의입니다.
현재의 기반시설과 실천방식 때문에 일부 미래만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로를 생각해 봅시다.
도로, 주유소, 자동차 구매를 위한 금융제도, 자동차 운송체계, 석유 생산, 석유 선물시장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집합, 또는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은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여러 조건에 좌우됩니다.
그 결과 다른 대안들이 실현될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기존의 모든 요소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이러한 체계는 수십 년에 걸쳐, 어떤 경우에는 이미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되어 왔습니다.
이것은 미래학이나 디자인학이라기보다 과학기술학의 논의입니다.
사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러한 연결 때문에 어떤 가능성이 닫힐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디자인에서도 중요합니다.
저는 토니가 그러한 문제를 디자인 분야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었다는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디자인과 미래의 관계는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그 관계를 살펴봅니다.
우선 이 책은 실무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디자인 리더, 디자인 관리자, 디자이너를 위한 책입니다.
캐머런과 같은 연구자를 주요 독자로 상정한 책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디자인 분야의 학자들이 책의 각주를 진지하게 검토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저는 현재 디자인과 미래구상 사이에 세 가지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실천이면서 동시에 담론의 영역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아마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관계일 것입니다.
디자인을 미래 연구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의 실천을 미래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활용 범위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가 사변적 디자인(speculative design)입니다.
사변적 디자인은 미래를 물질화하고 시각화하며, 창의성을 활용하고, 다양한 청중을 참여시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변적 디자인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주장에 아직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사변적 디자인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과 인지도를 확보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상당히 놀랍습니다.
EU 폴리시랩과 영국 폴리시랩을 비롯한 여러 정책실험실 조직이 사변적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변적 디자인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안에서 무언가 유용한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런 활동을 할 때 실제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어쨌든 디자인을 미래 연구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디자인과 미래를 연결하는 첫 번째 관계입니다.
두 번째는 디자인의 대상 자체를 미래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미래를 디자인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계획 분야의 오랜 역사가 있고, 계획이라는 접근을 문제화해 온 역사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전환디자인에서도 나타납니다.
전환디자인은 세계 전체와 사회생태적 위기를 디자인해야 할 대상으로 삼습니다.
그 모든 것을 디자인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시스템디자인이나 그와 유사한 접근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규모가 너무 큽니다.
공간적 규모도 그렇고 시간적 규모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을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관계는 좀 더 비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에 내재한 시간성(temporality)을 인식하고, 예를 들어 첫 번째 접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현재 관찰하는 세 가지 관계입니다.
저는 그와 관련된 자료를 상당히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분야에 종사하는 여러 사람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연구를 읽어보면서 디자인과 미래 사이에는 아직 더 많은 관계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책이 그 모든 것을 제시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려는 일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디자인 리더들에게 자신이 속한 조직과 제도의 복잡한 결합이 앞으로 5년 뒤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제 책에서는 10년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분야를 둘러싼 다른 여러 조건도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비즈니스 모델, 디자인 고등교육의 모델, 디자인의 책무성과 규제체계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저는 이 모든 조건이 불확실하며, 그러한 변화에 따라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러고 보니 대담의 맨 처음에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군요.
디자이너들에게 앞으로 10년 뒤에는 디자인 교육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 디자인하는 것이 과제가 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소규모 장인들이 모이는 모임을 만들겠습니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겠습니까?
디자인이라는 전문직이 계속 존재하도록 보장해 줄, 재정적으로 충분히 지원받는 기관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금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전공 학생과 교수들에게 제시하기에 정말 도발적인 디자인 과제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에게도 그 답은 없습니다.

루시 킴벨:
우선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한번 지켜봐야겠네요.
그리고 대학이라는 기관에서 일하고 계시니 캐머런도 잘 아시겠지만, 제가 겪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교수로 오랫동안 같은 기관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고위 관리자 몇 분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분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 고위 학술행정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구자라기보다는 대학의 관리자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그분이 미래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침 그 주제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제가 쓰는 책은 디자인의 미래에 관한 것으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존재하는 미술이나 패션 같은 다른 모든 학문과 실천 분야를 다루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반응에서는 호기심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우니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거나, 초고라도 공유해 줄 수 있겠느냐는 반응은 없었습니다.
대신 반응은 대략 이랬습니다.
"글쎄요,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저는 이런 태도가 제가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다루는 맹점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문제를 충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작은 책을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현재의 체계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관은 앞으로 10년 뒤의 모습도 기본적으로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같습니다.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인공지능이 조금 더 도입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실제로 그런 미래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등교육기관에는 그다지 유리한 미래가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습 자체는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구조는 지금과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제 책은 미래를 예측하는 책이 아닙니다.
탐색적 시나리오(exploratory scenarios)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 부분을 조금 더 이야기해 볼까요?
루시가 보내주신 자료에서 제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것은 픽션 형식의 시나리오와 짧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최근 미래 연구에서는 폴 그레이엄 레이븐(Paul Graham Raven)의 세계 구축(world-building) 연구를 비롯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흥미롭게 생각했던 것은 루시의 작업이 책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 안의 이야기들이 글로 작성된 짧은 서사라는 점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루시가 직접 구성한 이야기였습니다.
무언가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기계가 대신 작성해 준 글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루시에게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을 훨씬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지보다는 언어를 사용해서 세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능력을 말입니다.
물론 루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북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할 수도 있었겠지요.
실제로 그렇게 하실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책을 쓰고 계십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입니다.
디자인에서 글쓰기의 미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루시 킴벨:
두 가지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사실 제가 엄밀한 의미에서 디자이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물건을 그다지 잘 디자인하지 못합니다.
그런 제작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 글쓰기는 제가 오랫동안 해온 핵심적인 실천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더 쉽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답입니다.
그렇지만 2년 전에는 실제로 졸업생 몇 명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구비에서 조금 남은 예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졸업생 여섯 명을 고용했습니다.
두 명씩 세 팀으로 구성했으며, 거의 모두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출신이었습니다.
전공과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책에 수록하기 위해 작성해 놓은 세 가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업했습니다.
시나리오를 물질화하여 설치작품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제시한 과제는 미래의 스튜디오를 설치작품으로 구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의 세계는 제가 이미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세계 자체를 새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만든 세계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미래의 디자이너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유용한 결과물도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경력이 막 시작된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을 상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반면 저는 스튜디오를 운영해 본 경험도 있고 여러 형태의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은 제가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협업은 유용했습니다.
학생들이 실제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영상들도 제작했습니다.
결과물이 아름답고 완벽하게 마무리된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정정하자면, 영상 자체는 다른 동료인 애덤 라즈비(Adam Rasby)가 제작했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영상 제작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각적·물질적 결과물의 성격입니다.
상당히 잠정적인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물들은 사변적 디자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답게 제작된 영상과 정교한 오브제를 완성하고, 그것을 어느 세계적인 도시의 미래디자인박물관에서 전시하는 식의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은 훨씬 더 잠정적이고, 다소 불편함을 주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 실험을 마친 뒤에는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제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그냥 글로 쓰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름답게 제작된 사변적 오브제를 볼 때마다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브제들은 특정한 미래를 가정하고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작품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결과물을 이해하기 위해 관객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석해야 합니다.
저는 사변적 오브제를 둘러싼 미래 세계의 풍부한 맥락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글쓰기가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분석입니다.
미래 세계에 관한 분석을 훨씬 더 깊이 해야 합니다.
어떤 주제에 관해 창의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름답고 정교한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저는 그런 분석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방식대로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저는 그 이야기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직 여러분이 읽지 않은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죄송합니다만, 머지않아 읽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제가 준비한 일반적인 질문은 마지막입니다.
청중 여러분께도 미리 말씀드립니다.
지금까지 들으면서 떠오른 질문이나, 이 기회에 루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방금 루시가 들려주신 대학 관리자와의 일화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미래는 불확실하니 생각해 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두 손을 들어버리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런 태도가 정말 화가 납니다.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사실이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은 미래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은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활동입니다.
제가 늘 디자인의 가치를 열심히 옹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특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또 한 가지 화가 나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 조직의 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민첩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에 인공지능이 도입될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그것만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 문제를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루시가 책에서 불확실성을 상당히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구분해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을 기후변화에 관한 질문과 연결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읽은 책의 일부에서는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 이미 기후변화를 언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담이 이루어지는 시점의 상황도 반영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최근 네팔과 티베트 지역에서 발생한 재난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그 사건을 생각하다 보니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빙하가 붕괴하고 갑작스러운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상황입니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상황을 이렇게 가볍게 표현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정확히 언제 발생할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에 관해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질문이 상당히 크고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습니다만, 기후변화를 불확실성의 구체적인 사례로 삼아서 이 문제가 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루시 킴벨:
제가 불확실성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은 앞서 말씀드린 동료들과 그들의 연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불확실성은 미래학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조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원래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는 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을에서든, 초기 도시에서든, 왕궁에서든, 배 위에서든 일어나는 일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서면서 불확실성은 계산해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계산하고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캐머런이 말씀하신 것처럼, 디자인이라는 실천은 이러한 불확실성이 지닌 윤곽과 형태를 드러내고 구체화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 결과 디자인은 사회적으로 더 눈에 띄게 되었고, 더 중요해졌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디자인은 더 많은 영향력과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아직도 그것이 약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진입한 인류세(Anthropocene)에서는 불확실성이 훨씬 더 커졌습니다.
불확실성은 더 파괴적이고, 더 유동적이며, 다시 지배적인 조건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인식론적 개방성(epistemic openness)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원주민의 지식체계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다원적 세계관에 기반한 디자인(pluriversal design)과도 연결됩니다.
다원적 디자인은 이러한 사고를 표현하는 하나의 사례이자 방식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 우연적 조건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결코 완전하게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근대적 사고방식은 특정한 종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전제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오늘 아침 컴퓨터를 켰고, 컴퓨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여러분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런던 중심부에 다녀왔습니다.
이런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조건이 평소와 다름없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켄티시타운에서도 홍수가 발생했습니다.
네팔에서 그 일이 발생하고 며칠 뒤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완전히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갑자기 거리 전체가 침수되었습니다.
지역 상점과 교통에도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참사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불확실성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독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디자인의 관점에서도 불확실성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비즈니스 모델이나 다양한 실천방식, 제도적 구조가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책에서는 여러 차원의 불확실성을 검토합니다.
정확하게 몇 개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아마 22가지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캐머런이 읽으신 시나리오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 시나리오에는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라파엘 라미레스와 동료들에게서 배운 옥스퍼드의 미래 연구 전통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접근입니다.
불확실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거의 60세가 되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많아집니다.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성장합니다.
삶의 단계마다 일어나는 이런 사건들이 사람을 더 깊이 성찰하게 만듭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속한 문화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다른 문화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요.
저는 아주 젊었을 때, 지금 제 딸과 같은 나이였던 열여덟 살이나 열아홉 살 무렵에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사건들은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불확실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지금 제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충분히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던 문제를 이제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렇군요.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루시의 삶과 여러 방향 전환에 관해 이야기했던 내용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청중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루시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주변을 한번 둘러보겠습니다.

루시 킴벨:
여러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준비하시는 동안, 앞서 기후변화에 관해 물으셨던 질문에도 답하겠습니다.
사실 기후변화에 관한 내용은 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발전시킨 여덟 가지 거시적 불확실성 가운데 첫 번째가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입니다.
미래의 디자인 실천에 환경정의가 어느 정도 통합될 것인지, 또는 얼마나 주변화될 것인지에 관한 불확실성입니다.
따라서 기후 자체보다는 환경정의가 중심입니다.
기후변화의 정의와 공정성에 관한 측면, 그리고 그 결과를 다루는 것입니다.
캐머런이 읽으신 시나리오 중에도 기후와 관련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빙하가 녹고 있다는 식의 직접적인 묘사는 아닙니다.
지리적·지질학적·생태학적 차원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과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기후변화가 책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캐머런에게는 그것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견도 유용한 피드백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제 생각에도 기후변화가 배경으로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급격하고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나리오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기온이 점점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자연재해도 증가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정도의 대재앙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끔찍한 상황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다른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나면,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만큼 커다란 재앙이 발생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발생했던 수많은 재앙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재앙조차 별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큰 재앙이란 결코 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루시 킴벨:
지금 제 노트북 아래에는 책이 여러 권 쌓여 있습니다.
그중에 스티븐 마클리(Stephen Markley)의 아주 훌륭한 소설 『대홍수(The Deluge)』가 있습니다.
정말 좋은 소설입니다.
특히 북미의 미래를 상상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직 끝까지 읽지는 못했는데,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대략 2032년입니다.
이 소설은 백악관과 워싱턴의 정치, 폭력적인 활동을 포함한 북미의 사회운동, 생태계 파괴 등을 그립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 행동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상상합니다.
정말 놀라운 소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워싱턴이 계속 워싱턴으로 존재하지만, 포퓰리즘은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미 존재하던 모든 요소가 더 극단적으로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통해 그 과정이 전개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캐머런 톤킨와이즈:
좋습니다.
질문이 들어왔네요.
그쪽을 가리켜 보겠습니다.

모니카(Monica, 청중):
안녕하세요.
캐머런과 루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모니카입니다.
저는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디자인의 미래에 관해 저 역시 확신이 서지 않아서 10년 동안 일해 온 디자인 업계의 직장을 최근에 그만두었습니다.
제 연구는 디자인 미래구상 작업에 내재한 시간의 정치학(temporal politics)을 다룹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인식론적 개방성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인식론적 개방성에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 미래 연구는 이 문제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측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학계 밖에서 이루어지는 디자인 미래 관련 작업의 상당수는 공공부문, 디자인 에이전시 또는 기업에서 진행됩니다.
이러한 조직에는 예측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관들은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보다는 특정한 미래를 선택하고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일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설명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이미 다루셨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업무에서 인식론적 개방성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나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루시 킴벨:
감사합니다.
정말 크고 좋은 질문입니다.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U 폴리시랩(EU Policy Lab)입니다.
이 조직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공동연구센터(Joint Research Centre, JRC)에 속해 있습니다.
즉, 연구기관이라는 제도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그 성과를 유럽연합의 중앙 정책입안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EU 폴리시랩은 조직 안에 세 가지 역량을 구축했습니다.
하나는 미래 연구 역량입니다.
두 번째는 행동과학 역량이고, 세 번째는 디자인 역량입니다.
디자인 분야의 인력이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2017년이나 2018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2018년과 2019년에 이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팀 규모가 아주 작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커져서 아마 열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조직은 충분한 자원과 정당성을 확보했고, EU의 정책결정 생태계 안에서 인식론적 개방성을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주고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이었던 것 같은데, 브뤼셀에서 이틀 동안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저도 참석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행사에서는 여러 워크숍과 기조강연, 다양한 패널 토론이 열렸습니다.
프로그램이 정말 훌륭하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방법론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참석자 중 상당수는 이미 일부 방법론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론은 처음 접했습니다.
어떤 방법론은 미래 연구에서 가져온 것이었고, 어떤 것은 디자인에서 가져온 것이었으며, 두 분야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전한 방법론도 있었습니다.
EU 폴리시랩은 이러한 방법론을 실제 프로젝트에서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관련 행사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EU 폴리시랩의 웹사이트를 꼭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행사 이름은 폴리퓨처스(PolyFutures)였습니다.
아마 앞으로 2년마다 개최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조직 내부에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현재 이 팀은 자신들의 역량을 어떻게 설명하고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저도 그 팀과 계속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명확하게 설명함으로써 조직 내부의 예산을 확보하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여러 부서와 다양한 정책 과제에 관해 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특히 살펴보시기를 권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세대 간 공정성(intergenerational fairness)에 관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EU 폴리시랩은 미래 연구와 디자인 방법론을 함께 활용했습니다.
방대한 데이터와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지식체계가 존재하는 EU의 정책 환경 안에서 이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를 보면서 어느 정도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적절한 리더십과 자원이 확보된다면 이러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존의 여러 지식체계도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접근을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부패 등의 문제로 기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미래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는 사변적 디자인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식론적 개방성과 탐구하려는 태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세계관을 인식할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유럽 중심적 근대성에 기반한 가정을 포함해,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만으로는 인류세의 문제에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정부 조직에서 그런 사례가 나왔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루시가 이야기하시는 동안 과거의 기술기업들이 떠올랐습니다.
기술기업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자금조달 비용도 매우 낮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기업이 일종의 비밀 실험조직, 이른바 스컹크웍스(skunkworks)를 운영했습니다.
구글 X,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소, 디즈니 등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기존 사업과 동떨어진 여러 미래를 탐구하는 활동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반드시 인식론적 개방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불확실성이 자신들의 사업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면서 터무니없어 보이는 일도 시도하게 했습니다.
기존 사업과 전혀 다른 방향의 아이디어를 사업 내부로 가져오는 것이 일종의 위험관리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활동들은 모두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이곳 기업들에서는 그렇습니다.

루시 킴벨:
아니요.
저는 그런 활동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캐머런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은 제 연구의 맹점을 하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EU 폴리시랩을 사례로 선택한 이유는 정책결정의 맥락에 관심이 많고, 그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관련 기관에 접근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저는 구글 내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활동이 지금도 존재할 수 있지만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캐머런이 이야기한 2010년대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모두 트위터에서 즐겁게 활동하면서 새로운 일을 발견하고 의견을 나누곤 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자금이 흘러들어 오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세계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활동들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훨씬 더 은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민주적 책무성을 지닌 공공기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기관에서 초청을 받거나 담당자들을 만나거나 인터뷰를 하면 적어도 일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생각해 보니 제 책에서 대기업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몇몇 관계자들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실제로 22명을 인터뷰했고, 그중에는 대기업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연구자가 기업 내부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연구자가 가진 접근의 한계와 가능성, 그리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런데 이제는 인간보다 더 다양한 방향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상상하는 일을 기계에 외주화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루시 킴벨:
그것은 분명히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카르틱(Karthick, 청중):
감사합니다.
저는 카르틱입니다.
이전에 디자인 분야의 대학 교원으로 일했고, 지금은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방금 이야기한 대기업과 관련된 문제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기관의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한 협업을 넘어서는 대학과 산업계 간 협력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그리고 디자인 노동과 고용의 미래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루시 킴벨:
좋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제 책에서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디자인이 앞으로 어떤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 어떤 종류의 전문직 활동이 존재할 수 있을지를 논의합니다.
이것은 미래의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물론 하나의 정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정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디자인의 전문직화가 어떤 모습일지, 실제 업무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자리와 고용의 성격 자체도 다룹니다.
미래의 일자리와 고용에 관한 연구는 이미 엄청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연구마다 방법론의 수준과 통찰력의 깊이는 다릅니다.
여러분도 그런 연구 중 일부를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런 연구와 함께 제가 직접 인터뷰한 자료를 책에 반영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미래에 디자인 관련 일자리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식적인 디자인 교육도 지금만큼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미래란 앞으로 10년 정도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미래가 반드시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서로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중 하나의 시나리오에서는 디자인이 매우 공식화된 형태로 존재합니다.
상당히 기업 중심적이고 규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고도로 체계화된 디자인 활동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디자인은 하나의 역량으로 존재합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거나 협동조합 형태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조직들이 중심이 됩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합니다.
디자인 활동이 훨씬 더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그 결과와 위험에 대해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구조가 강화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미래 세계에는 인공지능이 광범위하게 활용됩니다.
방대한 데이터도 존재합니다.
업무와 학습을 위한 마이크로 자격이나 학습 인증체계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조직과 제도가 취하는 형태는 서로 상당히 다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들은 예측이 아닙니다.
전형적인 미래의 모습을 탐색하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입니다.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고등교육, 규제, 전문직 노동의 성격, 그리고 상당히 파편화된 미래 세계가 서로 교차하는 조건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미래 세계에는 여러 형태의 활동이 국지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제가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가 뒤섞인 모습으로 미래가 전개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나리오 방법론의 목적은 특정한 형태가 지배적인 디자인의 모습이 되는 상황을 가정해 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디자인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되고, 매우 구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루시, 방금 질문에는 대학과 산업계 협력의 경제적 관계에 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 호주에서는 연구개발 예산이 해마다 줄어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업계가 대학과 협력하고, 기관들과 함께 사변적이거나 비판적인 작업을 수행하려는 관심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영국의 상황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루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앞서 비밀 실험조직에 관한 질문을 드린 것도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입니다.
기업이 그런 활동을 완전히 내부화했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향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이 직접 자금을 지원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곳에서 그러한 활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협력할 의향은 있을까요?
적어도 그런 방식으로라도 협력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업은 자체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외부의 다양한 사고방식에 접근할 기회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루시 킴벨:
그렇습니다.
저는 앞으로 대학과 산업계 사이의 경계가 훨씬 더 모호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혁신의 속도가 느립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대학 체계가 앞으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면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국의 특수한 환경에서 관찰하는 모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디자인과 미술 분야는 여전히 어느 정도 사회적인 가치와 정당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학생들도 여전히 디자인과 미술을 공부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이런 교육이 완전히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기업 중심의 교육공간 안에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조직적 형태일지는 아직 불분명합니다.
대부분의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지만, 가끔씩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 일주일 정도 함께 활동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 이수에 대한 일종의 인증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한 인증은 기존 교육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기업 자체에서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남아 있는 소수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주체가 기업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교육의 의제를 지금보다 더 많이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제시하는 미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에서는 그렇습니다.

또 다른 시나리오에서는 일종의 아틀리에 모델이 등장합니다.

물론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새로운 형태의 아틀리에 모델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을 인정받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도제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숙소까지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그곳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나 기회를 얻고 싶다면 해당 교육모델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델은 대학 밖에 존재하지만 나름의 정당성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디자인 브랜드를 위해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튜브를 활용한 교육이나 그와 유사한 형태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러한 여러 형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그 안에서 대학이 차지할 공간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업들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학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규모의 대학 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일부 전문적인 디자인 실천은 여전히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을 기업이 직접 수행하면 됩니다.
교육과 인재 양성도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20년 뒤에는 인재 공급체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라는 더 복잡한 문제가 생깁니다.
하지만 제 책에서 다루는 미래는 2035년까지입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렇게 범위를 정하신 것은 편리하겠군요.
브래드가 질문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질문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다른 질문도 있을까요?

브래드 헤일록:
감사합니다, 루시.
그리고 캐머런도 감사합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루시에게 브래드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겠습니다.
맨 뒤쪽에 계셔서 화면으로는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브래드 헤일록:
괜찮습니다.
이번 질문은 두 분 모두에게 드리겠습니다. 캐머런도 답해 주셔야 합니다.
놓쳐버린 과거의 기회, 현재의 대안적 가능성, 또는 우리가 선호하는 미래와 관련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수준까지, 또는 그 사이의 어떤 규모에서든 좋습니다.
우리가 선호하는 미래를 실현하거나 과거에 놓쳤던 기회를 다시 활용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시행되기를 바라십니까?
방금 기회를 '자본화한다'는 표현을 쓰려고 했는데 적절하지 않네요.
그 기회로부터 혜택을 얻는다는 의미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루시 킴벨:
그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브래드.
왜냐하면 제가 지난해 참여했던 연구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연구는 영국 공무원 조직이 발행한 자료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공공부문 디자인 효과 실증 보고서 (The Public Design Evidence Review) - 영국 정부. 2025.7.  
구체적으로는 영국 내각사무처(Cabinet Office)와 공무원 정책전문직 조직(Policy Profession)이 발행했습니다.
영국 공무원 조직의 두 부문이 공동으로 수행한 작업입니다.
이 자료는 그들이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해 처음으로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물론 이것 자체가 구체적인 정책은 아닙니다.
연구와 개념을 정리하고 통합한 작업에 가깝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중앙정부가 이 연구에서 제시한 관점을 실제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영국 정부가 그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만, 다른 국가의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자원을 투입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인식론적 개방성을 지닌 디자인 역량을 공공행정 내부에 구축하고, 더욱 발전시키며,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투자했으면 합니다.
물론 공공행정이 이미 수행하고 있는 다른 활동들과 함께 발전시켜야 합니다.
저는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한 기본적인 틀은 지난해 발행된 자료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가 교류하는 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적어도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여러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이러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렇군요.
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답해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부유한 사람 몇 명을 단두대로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관련해 꽤 괜찮은 제안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9억 9,900만 달러를 벌고 나면, 그 이후에 버는 돈은 1센트까지 전부 세금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대신 그 사람에게 작은 상을 하나 줍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자본주의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꽤 괜찮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화석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질문에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싶습니다.
상당히 지루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지난 10~15년 동안 인간중심디자인과 사용자경험디자인 분야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생각할 때마다 놀랍니다.
디자인 분야의 채용공고에는 언제나 고객에게 끊임없이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고객서비스가 형편없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곤 합니다.
서비스디자이너들이 만든 웹사이트도 그렇고, 정부와 상호작용하는 경험도 그렇습니다.
사용자경험이 얼마나 형편없는지에 여전히 놀랍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정책은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 기업을 실제로 처벌하는 것입니다.
특히 기업 내부에서 고객을 대변하는 조직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이러한 조직의 담당자들은 주류 사용자뿐 아니라 다양한 사용자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기업이 주류 고객을 대상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용자들은 외면하는 상황을 바꿔야 합니다.
사용자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도록 만드는 방법은 기업이 사용자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을 때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면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갑자기 디자이너들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책임지는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는 디자이너는 주류 소비자를 대상으로 가장 적절한 타협안을 찾아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용 사례와 요구에 실제로 대응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다양성을 갖춘 경제가 나타날 것입니다.
기업들이 다양성과 차이를 반영하도록 서비스를 디자인하지 않았을 때 실제로 불이익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고령자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정부가 별도로 마련하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제 말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루시.
저는 기업이 여전히 고객중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런 용어를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이 이제는 지긋지긋할 지경이지만, 어쨌든 이것이 제가 제안하고 싶은 정책입니다.

루시 킴벨:
아니요, 저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캐머런이 디자인의 가치를 열렬하게 옹호하는 이야기로 돌아왔군요.
제도적으로 얽혀 있는 다양한 조직과 실천의 관계 속에서 디자인이라는 활동이 특별한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잠재적인 책임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 역량을 활용해 방금 말씀하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캐머런 톤킨와이즈:
그렇습니다.
저처럼 원래 디자인 분야 밖에 있다가 디자인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디자인이라는 것을 아주 강하게 믿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그렇습니다.
정작 디자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디자인에 기대하고 투자해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와서 디자인에 대한 믿음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루시는 앞으로 10년 뒤에 디자인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상상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예측이 아니라 하나의 상상이라고 해도, 그렇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런 상상 자체가 두렵습니다.
오늘 이렇게 오랜만에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더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많은 분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영국의 공휴일인데도 시간을 내어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루시 킴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